높아지는 보호무역 파고…실종된 대선 '통상공약'

  • 등록 2017-04-26 오전 5:30:10

    수정 2017-04-26 오전 5:30:10

[세종=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자국 이익을 전면에 내세운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의 통상 정책으로 인한 경제 불확실성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수출 대한민국’을 이끌 대선 후보의 대응 청사진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상은 우리 경제의 미래 경쟁력을 결정할 핵심이다. 이런 주요 의제마저 표심(票心)과 직결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뒷순위로 밀리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표 안 되는 통상 공약 대부분 ‘불투명’



25일 본지가 주요 대선 후보 5명의 ‘통상 공약’을 분석해 봤더니 공약 대부분은 구체적인 청사진이 없거나 대응 계획이 불투명했다.

후보 5명 중 정책 방향이 뚜렷한 것은 정의당 심상정 후보 1명뿐이다. 심 후보는 투자자국가소송제(ISD) 등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독소 조항 폐지, 불공정 무역협정 개선, 무역이득공유제를 통한 통상 이익 재분배 강화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공정무역’을 강조하며 대미 무역흑자 축소를 압박하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에 한국의 이익을 맞세우는 사실상 ‘맞불’을 놓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고 없이 ‘한·미FTA 개선’을 거론해 통상 당국을 긴장시키는 등 협상의 우선권을 쥔 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강공을 펼치겠다는 것이어서 실효성에 물음표가 찍힌다.

유력 주자인 문재인(더불어민주당), 안철수(국민의당) 후보는 ‘당당한 협력 외교’, ‘선진 통상 외교’라는 구호를 앞세웠다. 하지만 세부 내용이 미흡했다. 문 후보는 “미국과는 군사 동맹과 FTA를 바탕으로 전략적 유대를 지속하겠다. 중국과도 고위급 전략경제대화(SED)를 활성화하겠다”는 원론적인 견해를 보였다. 다자 안보·경제 공동체를 통합한 ‘동북아 플러스 책임 공동체’를 구축하겠다는 공약에도 정작 ‘어떻게’가 빠졌다.

보수 진영의 유승민(바른정당), 홍준표(자유한국당) 후보는 아예 뒷걸음질했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찬성을 넘어 ‘미국 핵전력 운용 시스템 구축’, ‘한반도 전술 핵무기 재배치’ 등 중국을 자극할 고강도 공약을 내놓고도 정작 현안인 중국의 무역 보복 대응 방안은 언급조차 없었다.

미·중 통상 압력↑…보호주의 국제 공조도 물 건너가

문제는 이처럼 대선 주자들이 통상 문제에 손을 놓은 사이 미·중 양강의 한국 압박은 거세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미국이 올해 들어 최근까지 반덤핑·상계관세 조사에 착수한 품목은 총 28건으로, 작년 전체 조사 개시 건수(53건)의 절반을 이미 넘어섰다.

반덤핑관세와 상계관세는 수입국 정부가 정상가격보다 너무 싸게 들여왔거나 현지 생산·수출 과정에서 보조금을 받은 외국 상품에 덤핑 차액(정상가격-수출가격) 및 보조금만큼 관세를 매기는 것이다. 미국은 이미 한국에 중국(153건), 인도(32건) 다음으로 많은 반덤핑·상계관세를 물리고 있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올해 미국의 반덤핑·상계관세 조사 개시 건수는 80건을 돌파해 2001년(95건) 이후 16년 만에 가장 많은 규모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처벌 수위도 함께 높이며 교역 상대국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이달 중순 한국산 유정용 강관(원유·천연가스 채취에 사용하는 고강도 강관)에 최고 25% 수준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한국 정부가 유정용 강관 주재료인 열연코일 생산 때 보조금을 지급하고 값싼 산업용 전기를 공급하는 등 가격을 왜곡했다고 보고 덤핑 차액(마진)을 전보다 높게 산정한 것이다. 미국이 수출국의 이 같은 ‘특별 시장 상황’을 고려해 덤핑 관세율을 상향한 것은 처음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 20일 상무부가 수입 철강 제품이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도록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무역확대법 232조에 근거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경우 수입을 제한하겠다는 의도다. 미 상무부가 1980년 이후 2001년까지 이 법을 적용해 실제 관세 부과 등 구제 조처를 한 것은 3건에 불과하다. 그만큼 이례적이라는 얘기다.

중국의 공세도 만만치 않다.

현재 중국 롯데마트 99개 지점 중 74곳이 중국 당국 영업 정지 처분을 받았다. 13곳은 불매 운동에 따라 자율 휴업 중이다. 전체 매장 88%가 영업을 못 하는 것이다. 지난달 15일부터 한국 단체 여행 금지령이 시작돼 3월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 수도 작년 같은 달보다 39.1%나 급감했다.

한국은 미·중 양강의 압박을 홀로 돌파해야 하는 처지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목소리를 내는 듯했던 국제 사회 공조는 사실상 기대하기 어려워져서다. 주요 20개국(G20)은 지난달 독일 바덴바덴에 이어 이달 20·21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도 ‘모든 형태의 보호무역에 저항한다’는 단골 문구를 공동 선언문에 담지 못했다. 미국 반발을 걱정해서다. 각국이 스스로 제 살길을 찾는 ‘각자도생(各自圖生)’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한 민간 통상 전문가는 “지금 대선 후보 중에 제대로 된 통상 관련 공약을 내놓은 사람이 누가 있느냐”라고 되물으며 “한국이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라면서도 표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들 손을 놓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 측 김경협 의원은 지난 24일 KBS1 라디오 프로그램인 ‘안녕하십니까 윤준호입니다’에 출연해 “필요에 따라서는 (미국과의 통상 압력이나 방위비 분담 압력, 사드 문제 협상 등을 위해) 특사의 활용을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면서도 “외교적인 전략은 구체적으로 밝히는 게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며 말을 아꼈다. 제현정 무역협회 통상협력실 차장은 “통상 전략은 밖으로 노출되면 협상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으므로 대선 후보들이 일부러 자세한 언급을 피하려는 의도도 있긴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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