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의 시대]해외 거주하는 자식에게 유산을 남기고 싶다면…

  • 등록 2020-10-31 오전 8:30:00

    수정 2020-10-31 오전 8:30:00

[배정식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 센터장] 외교부의 ‘2019년 재외동포현황’에 따르면 전 세계에 약 750만 명의 해외동포가 있다. 그 가운데 미국이 약 255만, 중국 약 246만, 일본 82만명이며, 유럽은 68만, 캐나다가 24만 명을 상회한다. 이민 초기 세대들은 한국에서 건너갔지만, 그 자녀들은 이제 현지에서 태어나 생활하고 있다. 상속의 관점에서 보면 이주 교민들의 부모세대가 사망할 경우 유산정리 절차는 좀 더 복잡해진다. 상속인 중에서 한 명이라도 해외에 있다면 협의하는 과정도 길어지고 준비해야 하는 서류도 많아진다. 양국에 걸친 상속과 세금제도를 알아보아야 한다. 비용도 증가한다.

그래서 우리 세법에서도 상속세 신고기간을 내국인에게는 피상속자가 사망한 달의 말일부터 6개월로 정한 반면 피상속인과 상속인 모두 비거주자인 경우에는 9개월로 정하고 있다. 해외에 거주 중인 상속인은 상속 절차를 마무리하기까지 진행 단계별로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해야 할 수 있다.

배정식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 센터장
현금을 상속받았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상속재산의 해외송금 절차를 거치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부동산이다. 상속받은 부동산이 아파트나 주택이라면 비교적 관리나 처리가 쉽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더욱 머리가 무거워진다. 규모가 크든 작든 부동산은 적절하게 관리를 해주어야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해외에 거주 중인 경우, 사실상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더구나 부동산의 가치가 과거처럼 시간이 지나면 무조건 상승하는 시대는 끝났다. 적정한 현금흐름, 즉 임대료 수입이 얼마나 좋은지에 따라 부동산에 대한 가치평가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효율적인 관리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부동산을 관리하기가 쉽지 않을 때는 유지하기보다는 처분하는 쪽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처분절차의 공정성이나 투명성에 대한 의구심도 생긴다. 또 상속받은 부동산이 나대지라면 그냥 매도하기보다 입지에 따라 현금흐름을 발생시키기 위한 신축 등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런 과정들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바로 이것이 상속 관련 모든 문제를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신뢰성 있는 기관이나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다.

해외에 있는 막내딸을 챙겨주고 싶은데…

80대 중반의 문영희 씨는 3명의 자녀 중 막내딸이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다. 어릴 적 엄마 곁을 떠나지 않겠다던 막내딸은 이제 엄마와 가장 멀리 떨어져 살고 있고, 한국에 있는 자녀들이 문 씨를 돌보고 있다.

최근 들어 문씨는 멀리 있는 딸이 늘 마음에 걸린다. 자신이 갖고 있는 현금 중 생활비와 병원비로 사용하고 남은 돈은 해외에 있는 막내딸에게 주고 싶다. 문 씨는 자신의 뜻을 밝혀 둘 방법을 알아보았다. 자필 유언장을 쓰는 방법도 있고 공증사무실에 가서 자신의 상속계획을 유언공증하는 방법도 있었다. 그런데 현금자산의 경우 고려할 요소가 한 가지 더 있다. 상속인이 유언장을 제시할 경우 상속재산인 현금을 찾는 과정에서 금융기관은 즉시 지급하는 것을 거절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유언은 최종 작성된 유언장만 법적 효력을 갖는데, 금융기관에서는 그 유언장이 최종 유언장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금융기관에서는 지급을 위해 다른 상속인들의 동의를 요구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문영희 씨는 본인 사후에 다른 상속인들의 동의 없이 막내딸이 쉽게 현금을 찾아갈 방법을 알아보았고 지인에게 유언대용신탁을 소개받아 계약을 체결하였다. 문 씨 생전에는 자신의 생활비, 의료·간병비 등에 충당하고, 남는 재산은 해외에 있는 막내딸이 찾을 수 있도록 유언대용신탁계약을 함으로써 고민을 해결할 수 있었다.

미국 시민권자인 자녀를 위해 상속문제를 대비해두고 싶은데…

정영미 씨는 남편과 함께 유학한 뒤 연구원으로 오랫동안 미국에서 살았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아들과 두 명의 손자가 있다. 한국 내 연구기관에서 근무하면서 부부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생활하던 중 남편은 먼저 세상을 떠났고 홀로 생활하고 있다. 정씨는 모교에 대한 애정이 크고 지금도 후학들과 꾸준히 교류하고 있기에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와 현금, 주식 중 일부를 남편과 자신의 이름으로 학교에 기부할 생각이다.

그런데 얼마 전 독감으로 크게 앓고 난 후에, 정 씨는 자신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인식을 하게 됐다. 장례문제도 그렇고 한국제도에 익숙하지 못한 아들이 한국을 오가며 상속문제를 매듭짓기까지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정 씨는 고민 끝에 그런 절차들을 신탁과 금융기관을 통해 종합적으로 지원받기로 결정하였다. 자신의 아파트와 현금, 주식 등을 신탁하고 사후에는 자신이 정한 대로 집행절차가 진행되도록 해놓은 것이다. 또 미국 시민권자인 아들을 위해 상속신고 처리, 부동산 처분, 금융자산 운용 그리고 필요시 아들의 해외 계좌로 송금해주는 절차까지의 종합적인 유산정리업무 지원 시스템을 활용하기로 하였다. 물론 자신의 재산 일부를 연구기관에 기부하는 내용도 추가하였다.

이처럼 신탁은 해외에 오랫동안 거주해서 국내 제도가 익숙하지 않고 먼 거리를 오가야 하는 상속인들의 어려움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서로 다른 제도와 관습 속에서 생활해온 복수의 상속인들이 원만하게 재산을 분할하고 상속절차를 무사히 끝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특히 부동산의 경우 효율적이고 투명한 시스템을 통해 관리와 처분 뿐만 아니라 재산의 가치를 높이는 역할도 수행하게 된다.

◆배정식 센터장은…

1993년 하나은행에 입사해 현재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 센터장으로 재직 중이다. 2010년 금융권에서 처음으로 리빙트러스트를 연 뒤, 신탁의 사회적 역할을 확장하고 있다. 서울대 금융법무과정, 고려대 대학원(가족법), 건국대 부동산 대학원 등을 거쳐 호서대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현재 금융연수원 등에서 강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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