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을 더듬은 조각…이탈리아 거장 피노티

서울미술관 '노벨로 피노티: 본 조르노' 전
현대조각가 피노티 개인전
1960년대부터 최근작까지 38점
구상·추상 넘나들며 대리석·청동으로 곡선미 살려
5월17일까지
  • 등록 2015-03-06 오전 6:42:00

    수정 2015-03-06 오전 10:00:46

노벨로 피노티가 1969년 발표한 ‘해부학적 걸음’. 동양의 윤회사상을 담고 있는 이 조각품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의 문에 이르러도 앞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의지를 담았다(사진=서울미술관).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미켈란젤로가 조각을 통해 재료 안에 내재한 형상을 꺼냈다면 나는 내 안에 있는 것을 꺼내기 위해 조각을 한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이탈리아의 천재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대리석 안에 이미 형상이 들어 있어 조각가는 그것을 끄집어낼 뿐이라고 했다. “당신도 미켈란젤로와 같은가”라는 질문에 이탈리아 현대조각의 거장으로 불리는 노벨로 피노티(74)는 다른 답을 내놨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어떤 방향이든 재료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중요하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5월 17일까지 열리는 ‘노벨로 피노티: 본 조르노’ 전은 피노티가 1960년대 중반부터 최근까지 작업한 조각품 38점을 선보이는 대규모 개인전이다. ‘본 조르노’는 이탈리아어로 ‘안녕하세요’라는 뜻이다.

피노티는 1939년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태어나 1966년과 1984년 베네치아비엔날레에 이탈리아 대표 작가로 참가했으며 1986년 이탈리아 만투아 궁전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여는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특히 이탈리아 예술가들이 최고의 영예로 생각한다는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의 제단과 동상 제작에도 참여했다. 성 베드로 성당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등을 소장한 이탈리아 조각의 성지이기도 하다. 한국과는 2004년 부산비엔날레에서 초청작가로 참가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전시장에서 만난 피노티는 유년시절 직접 겪은 2차대전의 참화가 자신의 초기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일곱 살 무렵 동네 언덕길에서 수레를 끌고 가던 일가족이 공중에서 떨어진 폭탄에 맞아 몰살하는 광경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며 “갈기갈기 찢긴 신체의 기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기에 2차대전에 참전한 아버지가 전사하면서 겪은 개인적 비극도 작품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노벨로 피노티의 초기 대표작인 ‘무제’. 전쟁의 참상을 직사각형 조형물 안에 절단된 신체로 표현했다(사진=서울미술관).


초기 대표작으로 꼽히는 1965년 작 ‘무제’는 가로로 길게 뻗은 사각기둥 위에 잘린 손과 팔을 비롯해 여성의 가슴과 손 등이 새겨져 있다. 전쟁의 광기로 고통받는 인간의 형상을 표현한 것이다. 1966년에 발표한 ‘발굴된 이미지’는 원기둥 안에 여성들의 파편화된 인체를 조합해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 역시 전쟁의 상흔을 새긴 작품이다.

그러나 피노티는 전쟁의 고통에만 빠져 있지 않고 생의 본질을 향해 나아가며 자신의 예술세계를 한층 숙성시킨다. 이런 과정은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인 사색을 담은 구상조각으로 나타났다. 1969년에 완성한 ‘해부학적 걸음’은 24개의 발걸음을 통해 동양의 윤회사상을 담아낸 작품으로 피노티 생애 걸작으로 꼽힌다. 상체를 생략하고 앞을 향해 걸어나가는 인간의 다리와 발걸음만으로 생에 대한 의지와 삶의 순환을 응축해 담아냈다.

이후에는 보다 다양하고 폭넓은 작품세계를 펼친다. 그중 하나가 1972년 작 ‘카프카에게 바치는 헌사’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주인공이 갑충으로 변해 있었다는 카프카의 소설 ‘변신’을 모티브로 했다. 나아가 ‘셰익스피어에게 바치는 헌사’와 ‘반 고흐에게 바치는 헌사’ 등으로 예술가들에 대한 존경을 표했다. 1986년 구소련에서 체르노빌 원전이 폭발하는 사고가 나자 ‘체르노빌 이후’ 등으로 사회문제를 환기시키기도 했다.

노벨로 피노티 ‘소식’. 생명의 잉태를 알리는 산모의 배 안에 아이의 발자국이 찍혀 있다(사진=서울미술관).


전시장을 둘러보면 한 명의 작가가 각종 대리석, 청동 등 재질이 다른 소재를 가지고 자유자재로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구상조각과 추상조각을 넘나들거나 융합하며 끊임없이 쇄신을 추구한 작가의 열정도 감지할 수 있다. 특히 곡선을 다듬어내는 피노티의 솜씨는 ‘이탈리아 장인의 손길’의 교과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품을 설명하던 피노티가 가장 오래 머물러 있던 작품은 2011년 작 ‘소식’이다. 피노티는 “며느리의 임신 소식을 듣고 만든 작품”이라며 “산모와 뱃속에 있는 손자의 발자국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그때가 생각난 듯 피노티는 연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구 반대편 벽안의 예술가가 마치 옆집 할아버지처럼 친숙하게 느껴지는 순간. 추상과 구상이 융합된 그의 조각이 이질적이거나 이국적이지만은 않은 이유가 짐작됐다. 02-395-0100.

노벨로 피노티(사진=서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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