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득 칼럼]불사조 정치인과 울분의 나라

  • 등록 2021-04-30 오전 6:00:00

    수정 2021-04-30 오전 6:00:00

사회생활 시작 후 30년 넘도록 ‘정치판’을 기웃거려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내놓을 것도, 보여줄 것도 없는 ‘작은 그릇’ 주제에 정치인 꿈을 꾼다는 것은 분수 넘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치인들에게 진짜 중요한 자질은 ‘두꺼운 얼굴 철판’과 ‘배짱’이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언론사 일 덕분에 잠시 자리를 같이했거나 뉴스로 들여다본 거물 인사들의 큰 공통점 중 하나는 거짓말이 들통 나도 표정 하나 변치 않거나 수시로 말을 바꾸는 데 능한 강심장이었음을 확인해서다.

정치판과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평가와 믿음은 여러 나라에서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시장조사기업인 입소스(IPSOS)가 2019년 미국 ·프랑스·일본·한국 등 세계 23개 국가를 대상으로 한 18개 직업의 신뢰도 조사에서 정치인은 9%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60%로 1위에 오른 과학자의 6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부끄럽지만 언론인도 21%로 중하위(13위)권에 그치며 별로 믿음 안 가는 집단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가운데 최근 국내 정치 현장의 음험한 이미지를 조금은 덜어낼 수 있는 뉴스가 하나 나왔다. 국회가 지난 21일 본회의에서 이스타항공 창업주인 무소속 이상직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가결처리한 소식이다. 이 의원은 표결 직전 신상 발언을 통해 “자신이 검찰로부터 당하고 있는 참을 수 없는 치욕과 수모를 동료 의원들도 언제든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자신의 범법 행위 때문에 국회가 불체포특권(현행범이 아니면 회기 중 국회 동의 없이 체포하거나 구금당하지 않는 권한)의 적용 여부를 가리는 표결을 한 것인데 반성은커녕 끝까지 국회 보호막에 기대 “억울하다”며 탄압받는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이날 투표 결과는 찬성 206표, 반대 38표, 기권 11표였다. 이스타항공과 계열사 6곳에서 555억여원 규모의 회사돈 횡령과 배임 행위를 저질렀다고 검찰이 밝힌 그의 혐의와 각종 비리 의혹 탓에 원래 소속이었던 더불어민주당도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28일 구속된 이 의원의 혐의는 검찰 수사에 적시된 것 말고도 직원 대량해고와 임금 체불, 두 자녀에 대한 지분 편법 증여 등 사회적 지탄과 공분의 대상이 될 내용으로 차고 넘친다. 그런데도 그는 지난 16일 전주 지법에 출석하면서 “나는 불사조다. 어떻게 살아나는지 보여 주겠다”고 말했다는 것이 이스타항공 노조의 주장이고 보면 ‘후안무치’의 네 글자 외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 연구팀이 전국 19세 이상 성인 147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올해 우리 사회의 울분 점수는 평균 1.75점으로 작년(1.58점)보다 크게 뛰었다. ‘만성적 울분 상태’라는 비율은 전체의 58.2%로 지난해의 47.3%보다 급상승했다. 울분을 느끼게 한 가장 큰 요인은 ‘정치·정당의 부도덕과 부패’로 16개 항목 중 1위를 차지했다. 정치가 국민을 분노하고, 울고 싶게 만드는 ‘원흉’이라는 고백이다.

정치인들은 자신이 나랏일에 헌신한다고 자부할지 몰라도 이는 셀프 채점 결과일 뿐이다. 법을 우롱하고 짓밟는 짓을 밥 먹듯 저지르고도 국회 울타리 뒤에 숨어 큰 소리치는 이들이 더 나온다면 국민이 들 몽둥이는 철퇴가 아니라 불벼락일 수 있다. 국민 가슴 속의 불사조는 나라를 위해 전선을 누비면서 생사의 고비를 숱하게 넘긴 전쟁 영웅이나 불굴의 스포츠 스타 등일 뿐 부패 정치인은 전혀 ‘아니올시다’다. 국민을 만성적 울분 상태에서 구해 낼 최고의 명약은 거짓과 부패, 반칙에 마침표를 찍는 일임을 이 의원뿐 아니라 정치인들은 어서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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