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서울시, "심야택시 대란, 카카오앱 골라태우기 탓"

서울시, 거리두기 단계별 택시운행대수 조사
개인택시 운행 늘려 코로나19 이전 수준 회복
승객 골라태우기·장거리 배차 불법 앱 '기승'
카카오 "불법 앱 사용시 플랫폼 이용 제한"
  • 등록 2022-05-05 오전 9:35:53

    수정 2022-05-05 오후 8:55:02

[이데일리 김기덕 기자]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이병현(가명)씨의 요즘 가장 큰 걱정거리는 귀갓길이다. 직업 특성상 야근이 잦은데 자정을 전후로 일이 끝나면 거주지인 은평구까지 가는 길이 꽤나 까다로워서다. 회사에서 택시비를 보전해주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이후에는 호출앱을 이용해 택시를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추가 콜비를 부담하려고 해도 ‘주변 반경에 운행 가능한 택시가 없다’는 앱 화면만 반복해서 표시될 뿐이다. 그나마 택시를 잡으려고 차가 많이 다니는 인근 사거리쪽으로 걷다보면 빈 골목마다 정차한 택시도 많고, 도로에는 예약중 표시가 떠 있지만 손님이 타지 않은 택시가 부지기수다. 이씨는 “빈 택시도 많은데 도대체 왜 택시를 잡을 수 없는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시민들이 빈 택시를 향해 모여들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최근 거리두기 해제 이후 심야시간 서울 도심 거리에는 매일 같이 택시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식당, 술집 등 다중이용시설 영업시간 제한이 풀리면서 그동안 억눌렸던 수요가 폭발하고 택시 공급이 줄어든 영향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이목을 끈다. 오히려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하면 택시 공급이 줄어든 영향보다는 폭발적으로 성장한 택시플랫폼 시장에서 횡행하는 ‘골라태우기’가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5일 서울시가 자체 조사한 ‘거리두기 단계별 심야시간 택시 운행 및 이용건수’를 보면 지난달 거리두기 전면 해제 직후인 4월 20~23일 나흘 동안 심야시간(오후 11시~다음날 새벽 2시)에 서울시내에서 운행된 택시는 일평균 2만967대다. 이는 단계적 일상회복 조치로 다중이용시설 이용시간을 자정(밤 12시)까지로 제한했던 직전 주(4월11~17일) 1만7205대와 비교하면 3762건이 늘어난 수준이다.

*심야시간(당일 오후 11시~다음날 새벽 2시), 단위(건수) *올 5월 4일 이후 심야전용택시 등 3000대 추가 공급 예정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이전인 상황과 비교하면 어떨까. 2019년 4월 한달 간 심야시간 일평균 택시 운행대수는 2만4333대로 최근 거리두기 해제된 이후 상황과 비교하면 조금 많은 수준이다. 다만 시가 지난달 20일부터 3부제로 운영되는 개인택시 부제를 심야시간에는 일시적으로 해제하기로 한데다 이달 4일부터 심야전용택시를 약 3000대 추가로 늘리기로 한 점을 감안하면 코로나19 발생 이전과 비교해 택시 공급량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법인택시 가동률이 코로나 이전에 비해 줄긴 했지만 개인택시 공급량을 대폭 늘려 공급량은 비슷한 수준”이라며 “심야 시간에 택시이용 승객도 10% 남짓 늘어나는데 그쳤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택시대란이 발생한 원인은 다른 영향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택시기사를 상대로 한 지지기 불법 앱, 플랫폼시장을 장악하는 카카오모빌리티의 목적지부스터 기능 등으로 단거리 보다는 장거리 승객을 골라태우는 관행이 현재의 택시대란을 야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기자가 거리두기 이후 밤 10시 이후에 마포역 인근이나 중구 세종대로 등 도심 일대에서 카카오T 앱을 이용해 반경 5~10km 가까운 거리를 목적지로 설정하고 호출을 해 봤다. 하지만 거의 1시간 가량 운행 가능한 택시가 앱 화면에 뜨지 않았다. 반면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경기도 서남권인 김포시나 안양시를 목적지로 설정하고 호출하자 10~20분 안돼 호출이 잡혔다. 일부 기사는 “비슷한 경기 지역으로 가는 승객과 동승해야 출발이 가능해야 한다”며 불법적인 합승을 강권하기도 했다. 이 같은 현상은 플랫폼 택시 등장 이후 승객이 택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 당하는’ 부작용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현재 카카오T는 비가맹 택시인 일반 택시기사를 대상으로 프로멤버십(월 3만9000원 이용료를 받고 기사가 원하는 목적지·지역으로 콜을 우선 배차하는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또 이와 별도로 최근에는 단거리나 특정 목적지의 콜을 차단하고, 장거리나 선호 지역을 우선 골라잡는 등 콜(호출) 필터링을 해주는 지지기라는 불법 앱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해당 앱을 설치하려면 택시기사가 직접 가입비와 월 이용료를 내야 하지만 수익이 월등히 좋은 경우가 많다. 서울시내 한 택시기사는 “심야시간에 단거리를 7~8건 운행하는 것보다 장거리 운행을 1~2건 하면 더 높은 수익을 받을 수 있는데 (지지기앱 설치를)마다할 이유가 있겠냐”고 반문했다.

서울의 한 법인택시 회사 주차장에 운행 나갈 카카오택시들이 주차돼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카카오 측은 승객 골라태우기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앞서 지난달 카카오T는 기업 입장에서는 이례적으로 택시 AI 배차 시스템 관련 알고리즘을 공개한 바 있다. 카카오T 관계자는 “비가맹 택시를 대상으로 한 목적지 부스터는 택시기가 반경 근처에 수요가 높은 장소를 추천하는 기능이기 때문에 골라태우기를 한다는 주장과는 거리가 멀다”며 “불법적인 지지기 앱을 사용하는 기사를 상대로는 플랫폼 이용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는 가맹택시에 승객 호출을 몰아줬다는 의혹을 받는 카카오모빌리티를 상대로 최근 제재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해당 보고서에 대한 카카오모빌리티의 의견을 받은 이후 검토 회의를 열어 조만간 제재 수위를 결정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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