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고속도로 88''은 군부독재 잔영

광주항쟁 진압 5공 정권, ''영호남 화합'' 명분으로 88고속도로 급조…대형사고 원인제공
  • 등록 2005-08-20 오후 12:59:44

    수정 2005-08-20 오후 12:59:44

[노컷뉴스 제공] "최고 속도가 80㎞밖에 안되는 고속도로가 고속도로입니까?"

지난 18일 대구지방법원 민원실.

대구 낙동환경연구소 정석교 소장이 '부당 통행료 반환소송'을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88올림픽 고속도로가 고속도로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만큼 통행료를 징수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한국도로공사 등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것.

정 소장은 "88고속도로의 경우, 최고 제한속도가 다른 고속도로보다 낮은 80㎞미터로 제한돼 있어 고속도로의 기능을 못할 뿐 아니라 왕복 2차선에 중앙분리대도 없어 사고의 위험이 상존한다"며 "일반 국도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88올림픽 고속도로는 고속도로가 아니다?

사실 정 소장의 말대로 '88올림픽 고속도로'는 제대로 된 고속도로라고 보기는 힘들다. 전국 25개 고속도로 본선과 지선 가운데 유일하게 왕복 2차선으로 된 고속도로이며 최고속도도 다른 고속도로보다 20㎞나 느린 80㎞로 제한돼 있다.

여기에 중앙분리대도 없고 최근까지 '개방형'으로 운영돼다보니 고속도로 중간에 '신호등'이 설치돼 있거나 톨게이트를 빠져 나가기 위해 좌회전을 해야 하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올들어 대전-통영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88고속도로는 개방형에서 폐쇄형으로 전환됐다)

이에 따라 88고속도로는 '죽음의 고속도로' '마(魔)의 고속도로'로 불릴 정도로 대형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에 따르면 90~2003년까지 88고속도로 교통사고 치사율은 31.9(교통사고 100건당 31.9명 사망)로 다른 고속도로에 비해 월등히 높다.



실제로 지난 2000년 10월 27일 대구에서 광주로 가던 트레일러가 중앙선을 침범한 뒤 마주오던 관광버스를 정면으로 들이받고 앞서가던 승합차도 추돌했다.

이 사고로 21명이 사망하고 6명이 중경상을 당했다.

이와 관련해 영남대학교 도시공학과 김갑수 교수는 "88고속도로의 경우 2차선인데다 중앙분리대가 없어 앞차를 추월하려면 부득이 중앙선을 침범해야 한다"며 "추월구간도 있기는 하지만 길이가 짧아 원만한 추월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88고속도로는 왜 이처럼 수많은 문제점을 안고 탄생한 것일까?


교통수요보다 정치적 고려에 의해 탄생…88고속도로는 '군부독재의 산물'

88올림픽 고속도로는 지난 81년 10월에 착공돼 84년 6월 개통됐다. 당시 존재했던 고속도로 가운데 유일하게 지역이름을 붙이지 않은 독특함만큼이나 영남과 호남을 직통으로 연결했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은 고속도로였다.

개통식 날 전두환 前 대통령 내외는 88고속도로의 한쪽 끝인 전남 담양에서 개통 테이프를 끊은 뒤 호남 주민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고속도로 한 중간인 지리산 휴게소에 마련된 준공식장에 도착했다.




전 前 대통령은 개통식 치사를 통해 "88올림픽 고속도로는 동서지역의 산업과 인정(人情)의 교류를 가속시킴은 물론 나아가 그러한 지역문물을 새로이 융화시키는 발전과 공영의 대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개통식장에서는 영호남 부부 8쌍이 합동 혼례를 올리기도 했다.

전 前 대통령의 이날 치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88고속도로가 탄생한 배경에는 영호남간의 교통수요를 충족시킨다는 차원보다는 '동서화합'이라는 정치적인 고려가 상당히 작용했다.

한국도로공사도 "도로망 확충의 의미보다는 영호남을 직통했다는데서 더 깊은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5공화국 'TK 정권'이 집권기간 내내 원죄(原罪)처럼 안고 살아야 했던 '5월 광주'를 '영호남 화합'의 이름으로 무마시키기 위해 급조한 도로가 88고속도로였던 것이다.

애초 과학적 수요예측과는 무관하게 정치적으로 탄생한 고속도로였던만큼 88고속도로는 만년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도로공사에 따르면 지난 연말 기준으로 수입액이 관리비용의 45%에 머물고 있는 형편이다.

정부, 2010년까지 확장키로…독재의 잔영 씻어낼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오는 2010년까지 주요구간을 왕복 4차선 내지 6차선으로 확장하기로 하고 한창 공사를 벌이고 있다.

비록 수요가 부족하기는 하지만 사고를 예방하고 '지역균형발전'의 차원에서 88고속도로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이같은 조치로 88고속도로가 '죽음의 도로'라는 오명과 함께 과거 군부독재의 잔영도 함께 씻어내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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