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면의 사람이야기]킬러문항보다 어려운 문제

  • 등록 2023-07-06 오전 6:15:00

    수정 2023-07-06 오전 6:15:00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성균관대 특임교수] 교육계가 ‘킬러문항’을 놓고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다. 대통령실은 킬러문항이 교육당국과 사교육계 사이의 보이지 않는 이권 카르텔의 산물로 수험생과 학부모의 불안감을 자극해 사교육비 지출 증가로 이어져 공정한 평가를 방해했다고 본다.

입시제도의 공정성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가치다.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학교에 들어가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사회적 합의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존의 교육시스템 자체가 변화의 압력에 직면했을 땐 입시제도 개혁은 지엽적이고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입시제도 문제보다 훨씬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는 전체 교육개혁의 방향성과 인재양성 시스템 구축에 있다.

한국의 교육시스템은 산업화시대에 필요한 인재양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4차산업혁명 시대의 통섭적이고 융합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인재양성엔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와중에 인구구조는 급격히 변하고 있어 교육계는 어떤 식으로든 변해야 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에 대해선 다들 우왕좌왕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유사 이래 처음 겪게 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지난 70년간 선진 경제대국들을 따라하는 전략으로 빠르게 성장했고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작금의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한 ‘앞선 이’가 없으니 스스로 제3의 길을 만들어 돌파해 나가야 하는 또 하나의 한국적 ‘K-교육 시스템’이 절실한 것이다. 즉 생존적 교육과 국가 인재양성 시스템으로 말이다.

이 문제에 있어 윤석열 대통령의 ‘교육부의 첫 번째 임무는 산업인재 공급’이라는 인식, 교육부의 ‘교육개혁의 첫 목표가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교육’이라는 자세는 다소 거칠 수는 있어도 방향성에 있어선 적확한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위기 상황에서 주어진 대내외적 여건, 즉 인구절벽, 국제정치의 신냉전화와 경제의 블록화, 자국 우선주의 등을 극복하고 미국,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3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그에 합당한 인재를 공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계 최강대국과 경쟁하며 국가를 성장시킬 인재를 양성한다는 것은 교육의 목표와 무게중심을 효율성과 경쟁력에 두고 철저히 글로벌화를 지향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다양한 선행조건들이 갖춰져야 하겠지만 우선 교육의 거버넌스를 분권화에서 집중화로 재구조화해야 한다. 미국의 한 개 주, 중국의 한 개 성 정도 규모 밖에 되지 않는 한국이 17개 시·도 교육청의 수장을 직선제로 뽑아 중앙정부의 교육정책 기조와 다른 목소리를 낼 이유가 없다. 전국을 하나의 풀로 보고 유능한 학생들을 선발해 최고 수준의 인재로 양성하는 데 교육감 직선제가 오히려 걸림돌이 되지 않는지 돌아봐야 한다.

정부는 교육기관에 대한 통제와 간섭을 과감히 내려놓아야 한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망한다는 이 시기에 각 대학이 어떻게 살아남을지 콘셉트를 정하고 그에 맞춰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스스로 시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무엇을 가르칠지, 학생과 교원은 어떻게 뽑을지, 재정은 어떻게 충당할지를 학교가 스스로 결정하고 시행하게 할 때 오히려 지금처럼 교육부가 만기친람하는 것보다 훨씬 다채로운 교육이 가능하다. 교육기관의 자율성은 고등교육뿐만 아니라 중등교육에까지 보장돼야 하는데 사립 중·고등학교도 교원선발, 커리큘럼 구성, 학교운영에 있어 독자적 판단이 가능해질 때 더욱 경쟁력 있는 교육을 할 수 있다.

일생의 어느 시점에선 어떤 형태로든 경쟁을 거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심지어 체육과 음악과 같은 예체능의 영역마저도 그렇다. 교육 기회의 평등화, 그리고 취약계층에 대한 교육 기회의 공적 기능 확대와 조화야말로 미래로 가는 길이 될 것이다. 맥 없는 평준화의 신기루에 현혹되게 하는 정치적 술수는 결국 “이해찬 세대”라는 폐해를 불러왔다. 생존과 성장, 그리고 소멸은 겪어야 하는 자연 법칙이며 그 바탕은 자연의 엄숙함이다.

G3 국가로의 도약에 필요한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개혁 과정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가치교육과 인성교육의 중요성이다. 과학과 기술의 고도화로 문학, 철학, 역사와 같은 인문교육이 등한시되고 윤리와 가치의 교육이 매우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되고 있다. 그러나 가족, 사회, 국가, 민족이라는 일견 고리타분해 보이는 가치를 제대로 교육하지 않았을 때 그 사회의 지속가능성은 위협받고 안에서부터 곪아들어 간다. 최근 급격히 불거진 마약문제와 과도한 개인주의의 확산에 따른 폐해는 교육에 있어 문제풀이 능력만큼이나 건강한 가치관의 형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심지어 저출산 문제조차 경제 논리로 해결하려는 주장의 행간에는 가치가 증발돼 있다. 사교육비의 가계지출 구성은 절대액이 아닌 비중으로 따져야 한다는 지적도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인생 왜 사냐?’하면 ‘행복하려고’란 답에 고개가 끄덕여지듯,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게 인생의 행복이란 것도 절감하고 공감한다면 아이에 대한 인식이 저출산의 대책이 아닐까하는 지적 또한 가치의 영역이다.

장삼이사들도 자기 자식만은 좋은 교육을 시켜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게 하려는 강한 열망이 있었기에 원조받는 국가가 원조하는 국가로 도약할 수 있었다. 그만큼 교육은 한국사회의 가장 중요한 가치이고 교육문제에 대한 관심은 한국인의 DNA에 각인돼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개혁을 논함에 있어 입시제도라는 포장지도 소홀히 하면 안 되지만 더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내용물인 교육개혁의 방향과 그에 따른 인재양성 시스템의 구축이다. 최근의 킬러문항을 둘러싼 논의가 입시문제에만 국한하지 않고 국가 교육정책의 근본 방향성을 논하는 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미래 국민의 삶과 생존에 심대한 충격을 가져올 세계 지식 수준의 평준화, 저성장의 고착화, AI와 기계의 인간화 등 급격한 지식, 경제, 환경의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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