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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빠른 무게감’이라고 해두자. 이미 말은 안 된다. 빠른 건 가볍다는 통설 타령이 아니다. 가벼워야 빠를 수 있다고 우기는 건 더더욱 아니고. 진중한 밀도감은 속도의 통제를 받지 않더란 얘기다. 한없이 무거운데도 빠르게 옮겨간 붓질이 신기하더란 얘기다. 그림과 마주한 첫인상이 그랬다. 칠흑같이 검은 바탕에 오로지 넓고 좁은 붓길로만 고단했을 화업의 시간을 얹어내고 있었다.
그래선가. 작가는 대뜸 나이 얘기부터 시작했다. 이럴 경우, 대개는 둘 중 하나가 아니겠나. 서열을 매겨 줄을 세워야겠다고 작정을 하거나 그 세월이 담아낸 성과를 강조하려거나. 그런데 그 분위기와는 또 결이 달랐다. 다른 색감이 보인다고 할까. 다른 질감이 닿는다고 할까. “회갑을 맞았다”고, 그래서 “이번 전시의 의미가 남다르다”고 했다. “예술이 뭔지가 항상 궁금했다. 그래서 돌아다녔다. 중국으로, 이탈리아로, 프랑스로. 이번 전시가 그 해답이 될 것 같다.”
작가 김길후(60). 그의 이름이 국내 미술계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지난 4월이다. ‘제11회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작가상’을 수상하며 ‘새삼’ 조명을 받았더랬다. 당시 선정위원과 심사위원으로부터 “김길후의 강력함은 거침없는 필선의 속도에서 나온다”며 “작가의 필선을 가로막을 표현의 필법조차 그를 막아서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붓이 머금고 있는 물감 묽기는 스스로도 흘러내릴 듯 자유롭고 작가의 붓길도 거침없이 해주고 있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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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작가를 한국 미술계가 서먹해 했던 건 그의 ‘넓은 발’ 때문이다. 2010년부터 작가는 한국과 베이징 스튜디오를 오가며 평면과 조형, 영상과 퍼포먼스 등 광폭한 작품세계를 펼쳐왔더랬다. 굳이 한국의 미술판을 위한 제스처가 따로 필요없었던 거다. 거기에다 말이다.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스스로 거스르기도 했다. 1999년 작품 1만 6000여점을 불길 속에 내던져버린 일이다. 4년 뒤에는 이름도 바꿨다. 지금의 김길후는 태어날 때부터 써온 ‘김동기’를 개명한 것이다. 결코 쉬웠을리 없는, 정체성을 싹 갈아치우는 비장한 결정을 내린 이유는 하나다. “예전 흔적을 다 지우자, 완전히 새롭게 다시 시작하자.”
이후 작가의 작업은 그 실현을 위한 지난한 도전이고 실험이었을 거다. 그러곤 마침내 그 답을 찾았다는 거 아닌가.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에 연 개인전 ‘혼돈의 밤’은 그 집약체다. 과정과 풀이까지 곁들인.
15㎝ 평붓으로 순식간에 붓길 낸 속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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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래야 하는데?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세상에, 예술이라도 내 뜻대로 가줘야 하는 거 아닌가. “감동을 억지로 조장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또 붓을 조작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가능한 한 다 내려놓고, 보는 이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이 최상이라고 믿는다.”
알 듯 모를 듯한 이 말을 좀 쉽게 풀어보자면 이런 거다. 내가 그리는 대상도 신경쓰지 말고, 작품을 사갈 수도 있는 상대도 의식하지 말고, 가장 순수한 자세와 마음으로 그리는 일 자체에만 몰입할 것. 생각도 하지 말고, 쉬지도 말고, 한순간에.
이 작업을 위해 그가 고안한 게 바로 속도감이다. 폭이 15㎝에 달하는 평붓 하나로 아크릴물감의 색을 바꿔가며 순식간에 붓길을 낸다. “절묘하게 물감이 흘러내리기도 하지만 흘러내리는 시간마저 주지 않게 일순간에 깊이를 담아내는 게 핵심이다.” 그래서 형체를 잡는 일 따윈 없다. 가령 그림 속에 눈이 보인다고 눈을 그려넣은 게 아니란 뜻이다. 그저 붓이 지나가고 나니 그 자리에 눈도 있고 바람도 불고 구름도 머물더란 얘기다. “붓으로 그리는 게 아니고 치고 나가는 거다. 그래서 자주 붓이 부러지기도 한다. 그만큼 빠른 속도감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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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떠난 그림…자아 지워버린 일필휘지
전시작은 딱 한 점, ‘노자의 지팡이’(2019)란 타이틀의 조각을 제외하곤 모조리 ‘무제’란 작품명을 가졌다. 2021년 제작한 회화 20점을 걸고(2014년 작품이 한 점 끼어있다), 조각 2점을 더 세웠다. 회화작품은 200호(259×194㎝)를 훌쩍훌쩍 넘긴 대작이 즐비한데, 화이트큐브를 되레 겁주는 검은 화폭이 거대한 벽처럼, 문처럼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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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근작과는 다른 이 작업이 이른바 ‘중국 화단에 보이기’ 식이었나 보다. “중국에선 물성이 있는 작품을 좋아하더라. 많이 바르면 좋다고 한다. 그래서 한번 해보자고 덤벼들었다.” 하지만 결론은 이렇게 났다. “역시 물성을 돋보이게 하는 작업은 계속할 게 아니더라”고. 결국 자아가 개입하는 건 내 일이 아니더란, 그 해답을 재촉한 게 아니었을까.
상업화랑에 뒤늦은 데뷔전이라고 할까. 우찬규 학고재갤러리 대표가 작가를 먼저 찾아나섰다고 했다, 대구에 있는 작업실로. 우 대표가 작가 작업실에 가는 일은 거의 없다니 여느 작가들에 비하면 ‘편파적’ 행보였던 셈인데. 우 대표는 첫눈에 “작품의 장중함에 눌려 왜 이제껏 이 작가를 몰랐을까” 싶었단다. “현대미술의 관습을 깨는 작가란 생각이 들었다. 작가들은 대개 자신을 드러내는 데 목적이 있는데 김길후 작가는 좀 다르더라. 물아일체(외물과 자아, 객관과 주관, 물질계와 정신계가 하나가 되는)의 경지에 올랐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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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들이 글씨로 남기는 ‘일필휘지’를 작가는 캔버스에 구사한다. 일필휘지를 그어낼 때는 숨조차 멈춰야 한다. 결국 그때를 만난 건가. “도는 이루기 어렵지만 유지하는 건 더 어렵다”는 노자의 ‘도덕경’ 문구를 먼저 입에 올린 건 작가다. 그 모티프가 됐을 조각 ‘노자의 지팡이’에 오래 머물며 ‘지팡이의 쓸모’를 전했다. 다리가 세 개인 삼발이여도 그 곁에 지팡이를 들인 까닭 말이다.
전시는 8월 22일까지. 같은 기간에 온라인 학고재 오룸에선 전시장에 걸리지 않은 회화까지 42점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