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에서 함께 생활해 온 김씨 부부는 이틀 전인 1월 17일 뒤늦게 결혼식을 올리고 강원도로 신혼여행을 왔다가 삼척에 사는 친척집을 찾아가던 길이었다. 김씨 부부가 앞에 가던 승용차를 추월하자 갑자기 승용차가 이들 부부가 탄 차량을 다시 추월하며 욕설을 내뱉었다.
김씨 부부에게 욕설을 한 차량에는 꿩 사냥을 가던 정형구(당시 36세)와 한모씨(당시 33세)가 타고 있었다. 과거 술집 사장과 종업원으로 만난 사이였던 정형구와 한씨는 모두 다수의 전과가 있었다. 특히 정형구의 경우 강도·강간 등 전과 6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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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한 발이 운전 중이던 김씨 머리에 맞아 김씨가 그 자리에서 숨졌다. 얼마 후 김씨 부부가 탄 차량은 오르막길을 오르다 멈춰 섰다. 정형구가 김씨 부부 차량으로 다가가던 순간 당시 인근 도로 공사현장 감리책임자였던 A씨가 차량을 타고 인근 도로를 지나쳤다.
A씨는 그저 ‘실랑이를 하고 있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현장을 지나쳐갔는데, 정형구는 현장을 목격했을 수 있다고 보고 곧바로 엽총을 네 발 발사했다. 그중 총알 한 방에 머리를 맞은 A씨는 그대로 현장을 벗어나 병원에 간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남편 살라달라” 애원하는 아내에게도 발포
김씨 부부가 모두 숨진 것을 확인한 정형구와 한씨는 자신들의 범행을 강도사건으로 위장하려 했다. 이들은 김씨 부부 차량 등에서 지갑, 카메라, 현금 80만원을 가지고 간 후, 현금을 제외한 나머지 물건을 인근 숲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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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구는 범행 두 달 전인 1998년 11월 사냥 목적으로 총기를 경찰서에서 반출한 상태였다. 정형구는 범행 이후 아무렇지 않게 총기를 다시 경찰서에 영치했다.
경찰은 사건 발생 이후 대대적인 수사를 통해 용의자를 특정하고 이들을 추적했다. 그리고 범행 6개월 만인 1999년 7월 6일 수원에서 이들을 나란히 검거했다.
정형구와 한씨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 동기에 대해 “김씨 부부 승용차가 길도 안 좋은 곳에서 기분 나쁘게 추월해 기분이 상했다. 순간적으로 총을 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살인 등의 혐의로 정형구와 한씨를 기소했다. 법원은 정형구에게 살인 혐의로 사형, 공범 한씨에겐 살인방조죄만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했고, 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당시 법원은 정씨에 대해 “사형 말고는 적용할 수 있는 형이 없다”고 밝혔다.
슬하에 어린 자녀들이 있던 김씨 부부를 잔혹하게 살해한 정형구는 정작 재판에선 자신의 어린 자녀를 언급하며 사형만은 면해달라고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형구는 김씨 부부 자녀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2억원 지급 판결을 받았지만, 지불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이마저도 지급하지 않았다.
사형이 집행되지 않으며 ‘사형수’로 복역 중인 정형구는 지난해 사형제 헌법소원 사건의 보조참가인으로 참여한 것이 밝혀지며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정형구는 한 언론을 통해 “너무 죄송스럽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지금껏 살아오고 있으며 용서를 구하고 싶은 마음”이라며 “기회가 주어진다면 모범적인 삶을 살겠다”고 밝혔다. 헌재에 제출한 의견서에선 “사형은 인도주의 관점에서 볼 때 허용될 수 없는 문화국가의 수치”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