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병동엔 감염병 피할 곳이 없다"…장애인단체, 인권위 긴급구제 진정

"폐쇄병동, 고립된 환경 속 감염·위생관리 이뤄지지 않아"
"수용시설에 집단 격리수용하는 폭력적 제도 성찰 필요"
"지역사회와 호흡할 수 있는 환경 제공해야…지금이라도 폐쇄병동에 대한 조치 필요"
  • 등록 2020-02-26 오후 2:11:08

    수정 2020-02-26 오후 2:11:08

[이데일리 박기주 배진솔 기자] 경북 청도 대남병원 정신병동과 칠곡 중증 장애인수용시설 ‘밀알사랑의 집’ 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대거 확인되고 있고, 사망자까지 발생했다. 이에 대해 장애인 단체가 폐쇄병동 등 장애인시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이들은 “정신장애인들이 폐쇄병동이 아닌 지역사회에 살았더라면 집단사망에 이르는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하루빨리 집단격리가 아닌 다른 확진환자에 대한 조치와 같은 치료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6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장애인 인권이 없는 차별적인 코로나 대응, 국가인권위원회 긴급구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청도 대남병원, 中 후베이성보다 더 위험…폐쇄병동에선 감염병 피할 곳이 없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등 12개 장애인단체는 26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폐쇄병동에서는 감염병을 피할 곳이 없다”며 이 같이 밝혔다. 이와 함께 이들은 보건복지부와 경상북도 등을 대상으로 폐쇄병동에 대한 지원체계를 마련해 달라며 인권위에 긴급구제 진정서를 제출했다.

26일 오전 7시 현재 코로나19에 따른 국내 사망자는 총 11명으로, 이 중 7명은 청도 대남병원과 관련된 환자다. 대남병원에서 나온 확진자가 총 113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약 6.2%사망한 것이다. 중국 후베이성 사망률이 3.3%인 것과 비교하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게 이들 단체의 주장이다. 또한 경북 칠곡 ‘밀알사랑의 집’에서는 장애인과 직원 등 22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장애인단체는 청도 대남병원 등에서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는 것은 폐쇄병동이라는 특수한 시스템 탓이라고 지적했다. 고립된 환경 속에서 시설 내 입소자의 감염관리나 위생 통제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고, 결국 단체 감염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전장연은 “이번 대남병원에서 발생한 상황은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재난 상황이 폐쇄병동 입원자와 같은 소수자에게 얼마나 폭력적인 재앙인지, 지역사회 의료시스템이 집단 격리수용 시설과 얼마나 괴리돼 있는지를 여실히 확인시켜주고 있다”며 “환자의 보건과 인권을 최우선한다는 의료기관의 폐쇄병동의 실상은 집단감염이 시작된 대참사의 발원지였다”고 말했다.

또한 이들은 “칠곡 수용시설에서도 새롭게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는데, 이는 시설 입소자가 보건 관리의 사각지대에 있음을 의미한다”며 “해당 시설의 확진자가 면회를 다녀온 다른 입소자로부터 감염된 사실은 시설 내 입소자 간의 감염관리나 위생 통제가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칠곡 장애인시설에서는 신천지 대구교회 신도로 추정되는 어머니와 거주했던 A씨가 시설로 복귀해 다른 입소자와 직원들에게 옮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6일 서울 중구 인권위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장애인이 코로나19로 숨진 청도 대남병원 입소자 영정에 헌화하고 있다. (사진= 배진솔 기자)
“지역사회와 호흡할 수 있는 환경 제공 통해 집단감염의 고리 끊어야”

장애인단체는 “폐쇄병동과 거주 수용시설에서의 코로나19 감염 사태가 단지 확인되지 않은 우연한 유입경로로 인해 벌어진 비극 정도로만 다뤄지지 않길 바란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신장애인’을 위험한 사람으로 낙인찍고 폐쇄병동과 같은 수용시설에 집단 격리수용해왔던 사회의 폭력적 제도를 함께 성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어 “더 이상 격리공간에 장애인을 무차별 집단수용시킬 것이 아니라 시설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의 구성원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하고, 집단감염과 집단사망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염형국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6인 1실로 운영되고 있는 대남병원을 코호트 격리하는 것은 경증을 중증으로 만드는 전염병 인큐베이터이고, 최선을 고려하지 않고 코호트 격리라는 차선, 차차선을 선택한 것”이라며 “한 명씩 격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등 최소한의 방어라도 해야 하는데 고민도 없이 차선을 선택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행위이고, 중증장애인을 보건 사각지대에 놓이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단체는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지금이라도 폐쇄병동에 대한 적극적인 조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장연 등은 “만일 폐쇄병동에 입원된 정신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았더라면, 그래서 동네 가까운 병원을 일상적으로 이용하고 지역사회와 통합된 환경에서 적절한 건강상태 및 점검과 신속한 조치를 받았더라면, 코로나19와 같은 위기상황에서 폐쇄병동 입원환자라는 집단이 아니라 개개인에게 필요한 지원을 여타 확진자처럼 즉시 집중적으로 케어받고 집단사망에 이르는 참사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어 “보건당국은 집단격리, 집단치료 형태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다른 확진환자에 대한 조치와 동등하고 안전한 치료대책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며 “더 이상 폐쇄병동이 아닌 지역사회와 통합된 환경에서 적절한 의료시스템을 이용하며 함께 살아가기 위한 강력한 ‘탈원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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