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무실' 연료비 연동제…"한전의 손실 보상 의무화해야"

유가 등 연료비 급등에도 연료비 조정단가 ‘동결’
정부 "코로나 장기화· 물가상승률 등 감안해 결정"
2개 분기 연속 유보 권한 발동…도입 취지 어긋나
"전기요금 인·허가권 지닌 독립기관 둬야" 의견도
  • 등록 2022-03-29 오후 2:31:52

    수정 2022-03-29 오후 2:31:52

[이데일리 윤종성 김형욱 기자] 정부가 ‘국민 생활안정’을 이유로 2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동결했다. 코로나19 장기화와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한 조처라지만, 우크라이나 사태 등에 따른 연료비 급등에도 정부가 2개 분기 연속 유보 권한을 발동한 것은 연료비 연동제 도입 취지에 어긋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연료비 연동제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한전의 손실에 대한 보상 계획을 제시하도록 의무화하는 등 제도가 개편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기요금이 정치 논리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독립적인 형태의 규제기관을 둬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20일 서울의 한 주택가에 전기계량기가 설치되어 있다(사진=연합뉴스)
인상요인 33.8원인데…3원 인상 요구도 거절

29일 한전에 따르면 2분기 전기요금의 연료비 조정단가는 1분기와 같은 kWh(킬로와트시)당 0원으로 책정됐다. 연료비 연동제는 석유, 액화천연가스(LNG), 석탄 등 전기 생산에 들어간 연료비 변동분을 3개월 단위로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것으로, 조정 폭은 직전 분기 대비 kWh당 최대 ±3원 범위로 제한돼 있다.

한전은 2분기 실적연료비가 584.78원/kg으로 기준연료비(338.87원/kg)보다 72.6% 상승한 것을 근거로 kWh당 33.8원의 2분기 연료비 조정단가 인상 요인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분기별 조정 상한 최대 폭인 kWh당 3원 인상안을 지난 16일 정부 측에 제출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고, 2분기 연료비 조정단가 적용 유보 의견을 통보했다.

연료비 조정단가를 동결한 것은 인플레이션 우려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3.7%를 기록하는 등 지난해 10월(3.2%) 이후 5개월째 3%대 높은 상승률로 고공행진 중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국제 연료가격 상승 영향으로 연료비 조정단가 조정요인이 발생했지만, 코로나19 장기화와 높은 물가상승률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의 생활안정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동결 배경을 설명했다.

4월부터 전력량요금(기준 연료비)과 기후환경요금 인상분(kWh당 6.9원)이 전기요금에 적용된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정부는 전력량요금을 4월과 10월 2회에 걸쳐 kWh당 4.9원씩 총 9.8원을 올리고, 기후환경요금도 4월부터 kWh당 2원씩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다음달 부터 전기요금은 연료비 조정요금 인상 없이도 kWh당 6.9원 오른다. 4인 가구의 한 달 평균 전기 사용량(307kWh) 기준으로 전기요금 부담은 약 2120원(부가세 및 전력기반기금 제외) 늘어난다.

연료비 연동제, ‘전기요금 합리화’ 취지 못살려

전문가들은 지난해 도입한 연료비 연동제가 ‘전기요금 합리화’라는 당초 취지와 달리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정부는 연료비 조정단가 첫 시행이던 지난해 1분기 물가 상승 우려로 3원 인하했다. 이후 연료비 상승 등 인상 요인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2, 3분기 연속 동결했고, 4분기에 3원 인상하는 데 그쳤다. 이 같은 비현실적인 조정이 한전이 지난해 사상 최대인 5조8601억원의 적자를 낸 배경으로 지목됐으나, 연료비 조정단가는 올 1, 2분기 연속 동결됐다.

이번에도 연료비 인상분이 전기요금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한전의 적자 규모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한전의 올 1분기 실적 전망치(컨센서스)는 5조2799억원 적자로, 사상 최대였던 지난해 연간 적자 규모 수준이다. 에프앤가이드는 현 추세라면 한전의 올해 연간 적자 규모가 14조8045억원에 달할 것으로 봤다. 적자 지속으로 한전은 필요 자금의 대부분을 회사채로 조달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한전이 올해 발행한 회사채는 9조6700억으로, 지난해 회사채 총 발행 규모(10조4300억원)에 육박한다.

임원혁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정치적 부담 때문에 연료비 조정액 상한을 둔 건데 윤석열 당선인의 주장을 수용했는지 그마저 유보했다”며 “지금 추세라면 한전이 차입금을 들이는 것도 어려워지는 만큼 조만간 연료비 조정단가를 올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가 연료비 조정을 유보하는 조항을 페지하거나, 전기도 가스처럼 미수금 개념을 두도록 의무화해 추후 보상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장기적으로는 영국의 가스·전력시장위원회(GEMA), 독일의 연방네트워크기구(BNetzA), 미국 주정부의 공익사업위원회(PUC)처럼 독립적인 규제기관을 둬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전기요금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을 감안해도 정치 논리가 개입돼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심각하다”면서 “선진국들의 경우 전기요금 인·허가 권한을 갖고 있는 독립적인 규제기관을 둬 비교적 자유롭게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영환 홍익대 전기공학부 교수는 “전기요금이 정치적 논쟁의 도구가 되지 않으려면 한전이 독점하고 있는 전력판매시장에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방향으로 수술이 필요하다”며 “통신산업처럼 민간에 개방해야 정치권 입김을 줄이고, 산업 체질을 강화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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