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억대 슈퍼개미, 주가조작 범죄자로 전락한 이유는

소액주주 운동·사회공헌 앞장서다가 주가조작 혐의 받아
“저평가 주식으로 가치투자” 했다는 주장에도 실형 선고
法 “매집→부양→처분의 전형적 시세 조종범 양태 보여”
  • 등록 2020-08-12 오전 11:02:00

    수정 2020-08-13 오전 11:02:07

[이데일리 박순엽 기자] 노점상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주식에 투자해 한 때 200억원대의 주식을 보유했던 이른바 ‘슈퍼 개미’가 주가 조작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주식 투자방식인 ‘가치투자’를 했다고 주장했는데요. 그러나 법원은 그가 주식을 사들여 주가를 끌어 올리다가 이를 한꺼번에 팔아 이득을 보는 전형적인 ‘시세 조종범’의 행태를 보였다고 판단했습니다.

(일러스트=이미지투데이)


‘슈퍼개미’ 표씨 “저평가 주식에 ‘가치투자’ 했을 뿐”

지난달 22일 서울남부지법에선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표모(66)씨 등 10명에 대한 선고 공판이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표씨는 시세조종 범행 전반을 계획해 주도했다는 이유로 공범 중 가장 높은 형량인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표씨는 1990년대부터 전업 투자자로 활동한 인물인데요. 외환위기 때 파산 위기까지 몰렸다가 노점상 등으로 돈을 모아 다시 주식투자에 뛰어들어 2000년대 중반엔 200억원대 주식을 보유한 자산가로 이름을 떨쳤죠. 그는 기업의 불합리한 배당 정책에 항의하는 등 소액주주를 위한 운동에도 앞장섰고, 학교에 기부하는 등 사회 공헌 활동에도 적극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이랬던 표씨가 실형을 선고받게 된 건 코스닥 상장사 H산업 주식을 사 모은 뒤 주가를 조작했다는 혐의 탓입니다. 재판에서 그는 자신에게 적용된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죠. 표씨는 오히려 H산업 주식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해 투자 원칙에 따라 H산업 주식을 매수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저평가된 주식을 장기 보유해 차익을 노리는 가치투자를 했다는 의미였죠.

표씨는 겉으로 고가 매수나 물량소진 매수로 보이는 주문들도 혐의와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는 “H산업 주식의 투자 가치를 믿고 주식을 더 많이 매수하려 했지만, H산업 주식 거래량이 많지 않아 적극적으로 매수에 나서다 보니 그렇게 보였을 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아울러 표씨는 자신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이들과 공모하지 않았다고도 반박하기도 했죠.

H산업의 주가 차트 (사진=네이버 금융 홈페이지 갈무리)


재판부 “전형적 시세조종범…수급팀 운영했다고 판단”

그러나 법원은 표씨의 말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재판부는 그의 행동을 전형적인 시세조종범의 ‘매집→부양→처분’ 행태라고 지적했습니다. 짧은 기간에 H산업 주식을 대량으로 매수하고 주가가 부양되는 동안 높은 매매 호가 관여율을 보이면서 주식을 매도·매수하다가 주가가 하락할 때 대량으로 H산업 주식을 매도했다는 거죠.

실제로 재판부가 표씨 일당이 시세조종을 시작했다고 본 시점인 2011년 11월 16일 H산업 주가는 2만4900원(종가 기준)이었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하다가 2014년 8월 14일 최고가인 8만8600원까지 오르죠. 그러나 H산업 주가는 2014년 9월 하한가를 거듭하며 2014년 9월 15일 2만8500원까지 떨어집니다. 2년 6개월간 오른 주가가 한 달 사이 급락한 셈이죠.

그쯤 표씨는 H산업 주식을 한 주만 남기고 전량 매도합니다.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표씨는 2014년 8월까지만 해도 H산업 주식을 30~40만주 보유하고 있었죠. 법원은 이를 두고 “표씨는 H산업 주식을 매집한 후 시세조종성 주문을 제출하면서 주가를 보유하다가 짧은 기간에 1주만 남기고 모두 팔아서 막대한 차익을 챙겼다”고 설명합니다.

재판부는 또 표씨가 수급팀을 동원해 H산업 주가를 고정하거나 안정시키려고 했다고도 판단했습니다. 표씨 등이 타인에게 대가를 주고 H산업 주식을 고가로 대량 매집하거나 통정매매(두 사람 이상이 미리 주식의 가격과 물량을 짜고 매매해서 가격을 올리는 행위) 방식으로 매수하게끔 했다고 본 것이죠.

서울남부지법 (사진=이데일리DB)


‘하한가 풀기’ 요청한 정황도 드러나…法 “죄질 나빠”

아울러 재판부는 표씨 일당이 ‘하한가 풀기’를 요청하며 다른 시세조종 세력에 돈을 건넨 정황도 판단 근거로 삼았습니다. 표씨 등은 2014년 9월 2~12일 H산업 주가가 6일 연속 하한가를 기록하자 하한가가 이어지는 상황을 종료시켜 달라고 외부 세력에 속칭 ‘하한가 풀기’를 요청하죠. H산업 주가의 연속 하한가를 종료시켜주면 14억원을 주겠다는 제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력은 ‘하한가 풀기’를 할 의사도, 능력도 없었죠. 다만, 주가가 상당기간 하한가를 이어와 곧 하한가를 벗어날 수 있다고 판단했고, 만약 주가가 상승하면 자신들이 시세조종을 한 것처럼 꾸밀 속셈이었습니다. 실제로 9월 15일 주가가 상승했고 이들은 돈을 받았으나 결국 사기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습니다. 이들 중 한 명은 유명 배우의 남편으로 알려졌죠.

재판부는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 표씨와 함께 범행을 벌인 증권사 직원 박모씨 등 5명에겐 징역 2~5년, 또 다른 2명에겐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습니다. 나머지 3명은 증거 불충분 등을 이유로 무죄가 선고되죠. 재판부는 범행을 주도한 표씨 등에겐 “수행 역할, 거래 규모, 범행 방법 등에 비춰보면 죄질이 매우 나쁘다”고 질책했습니다.

재판부는 또 H산업을 시세조종 대상으로 삼은 이유를 표씨의 소액주주운동 경력에서 찾기도 했습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표씨가 소액주주운동을 벌이면서, 주식 거래량이 적고 당기순이익이 매년 안정적인 회사의 주식을 대량으로 매집하면 시장 지배력을 갖고 그 주식의 주가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고 밝혔죠.

한편 성공한 ‘슈퍼개미’로 불리던 표씨의 몰락을 지켜보는 개인 투자자들의 씁쓸함은 감출 수 없는 듯합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자본시장에 여전히 시세조종 행위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탓입니다. 다수의 합법적 투자자들에게 박탈감을 안겨주는 범죄를 막기 위해선 금융감독원 등 자본시장을 감독하는 기구들이 제 역할을 해야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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