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연극 `오이디푸스`(사진=국립극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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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거문고 가락이 고대 그리스의 비극적 정서와 맞아떨어질 줄 몰랐다. 북소리는 오이디푸스의 심장고동을 따라 울리고 목에서 토해내는 구음은 눈먼 장님이 된 그의 눈물 대신 흐른다. 역병이 도는 `테베`.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서 시민들이 울부짖자 왕 오이디푸스는 직접 나서 그 고통을 해결하기로 한다. 그러나 잠자고 있던 저주는 이 순간 그를 휘감는다.
“어리석다 두 눈. 눈먼 자는 당신이오. 안다는 것이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할 때 그것은 얼마나 큰 짐이 되는가.” 신들 몰래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아 눈이 먼 예언자는 진실을 알자고 자신을 다그치는 오이디푸스에게 독설을 쏟아낸다. “아침에는 아비를 먹고 점심에는 어미를 먹고 저녁에는 제 눈을 파먹고 헤매는 짐승….”
예언자의 말은 사실이 됐다. 그렇게 거스르고 싶었던 가혹한 운명에 굴복해 제 눈을 스스로 찌른 오이디푸스가 부르짖는다. “신이여 만족하십니까. 제가 이렇게 짓밟혔습니다.” 신이 짜놓은 각본대로 살아왔다는 사실에 미친 듯 절규하던 오이디푸스는 결국 가장 현실적인 항거를 택한다. 절벽에서 몸을 던져 운명의 주인이 신이 아닌 인간이란 걸 보인 것이다. “한 걸음 내딛었을 뿐인데 어느 새 절벽. 운명을 준 것은 신이지만 운명을 끝낸 것은 바로 나요.”
연극 `오이디푸스`에는 신화적 초인성을 버린 한 평범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그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통정한 사내였을 뿐이다. 기원전 429년 아테네에서 첫 공연된 소포클레스의 희곡 `오이디푸스 왕`을 2011년 바로 오늘의 언어로 풀어낸 것은 연출가 한태숙이다. 그는 관객들 가슴에 돌덩이를 하나씩 기꺼이 얹어놓을 줄 아는 연출가다.
지난 1월 초연했다. 오이디푸스의 어머니이자 아내인 `요카스타`가 차유경으로 바뀌었을 뿐 이상직·정동환·박정자 등 선 굵은 배우들의 원숙한 정극 연기는 이번에도 이어진다. 코러스가 강화됐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9.5미터 높이의 검은 벽, 거기에 매달린 그들까지 오이디푸스의 또 다른 운명이었다.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27일까지다. 02-3279-2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