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좌 이용 보이스피싱 1/3로 급감…대면편취는 5배 폭증
15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계좌이체 활용 보이스피싱 범죄는 1만596건으로 전년(3만517건)의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2018년 역시 3만여건의 계좌이체 활용 범죄가 있었던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수치 변화다.
이는 금융당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지급정치 요청 등 피해구제 방안과 금융권의 감시망이 촘촘하게 작동하면서 보이스피싱 범죄자들이 이를 피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 지난 5일 경남 진주의 한 시민이 검찰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일당에게 속아 2900만원을 송금했다가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해당 계좌에 대한 지급정지를 신청했고 일당의 범행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처럼 계좌이체를 통한 범행이 어려워지자 보이스피싱 범죄자들은 직접 만나 돈을 건네받는 방식(대면 편취) 등 다른 형태의 범행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는 수치에서도 확연히 나타났다. 대면 편취 유형 보이스피싱 범죄는 지난 2019년 3244건에 그쳤지만 2020년 1만5111건으로 5배 가까이 늘었다. 범죄 자금을 추적하기 어려운 모바일 상품권 등을 구매해 보내도록 하는 방식의 범죄도 727건에서 3582건으로 5배 증가했다.
|
“검사입니다” 사칭에 수십억 건넨 피해자도
실제 지난해 7월 발생한 범죄를 보면 범행 일당은 피해자 A씨에게 ‘캠핑 물품이 집으로 배송될 예정’이라는 문자를 보냈고, 주문한 적이 없는 A씨가 전화를 걸어 문의를 하면서 범행을 시작했다. 이들은 ‘심재철 검사’를 사칭하면서 “현재 대포통장 관련 범행에 연루됐으니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구속당할 수 있다”고 겁을 줬고, 돈을 인출해 자신들이 보내는 ‘금감원 김태환 대리’에게 해당 자금을 건네라고 했다. A씨가 이러한 방식에 속아 일당에게 건넨 현금은 약 닷새동안 22억8000만원에 달했다. 이는 1인당 피해액으로는 가장 큰 규모였다.
또한 대출을 받아 보이스피싱 일당에게 돈을 직접 건넨 피해자도 있었다. 피해자 B씨는 지난해 8월 “현재 대포통장 관련 범행에 당신의 명의가 도용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수화기 너머의 인물은 “금감원에서 대포통장을 막았는데, 이를 확인하기 위해 추가 대출을 받아봐야 한다”며 특정 은행과 캐피탈사를 지정해 피해자에게 대출을 받도록 했다. 이후 B씨는 대출받은 2100만원을 금감원 직원을 사칭한 일당에게 건넸다.
|
이처럼 새로운 방식의 보이스피싱의 범죄가 급증하고 있지만 현 제도 아래에서는 시민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현재 범죄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지급정지 요청의 경우 이미 범죄 피해를 당한 피해자나 수사기관 등이 은행에 지급정지를 요청하고 해당 계좌의 자금 흐름을 막는 방식이다. 돈을 인출해 직접 건네는 대면편취의 경우 돈을 줬다면 지급정지는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돈을 인출하는 것 자체를 차단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보니 돈을 인출하러 온 고객을 응대하는 은행 직원이나 상품권을 대량 구매하러 온 고객을 맞는 편의점 직원 등 관계된 이들의 주관적인 판단이 범죄를 막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 될 수밖에 없다.
경찰 관계자는 “본인 계좌에서 본인이 돈을 찾는 상황이다 보니 인출 자체를 강력하게 막을 수 있는 수단이 없다”며 “은행 관계자 등이 이상한 점을 포착해 경찰 등 수사기관에 알려 막지 않는다면 범행을 막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대면편취는 송금·이체 과정을 거치지 않기에 현행법상 전기통신금융사기에 해당하지 않아 ‘전화번호 이용중지’를 할 수 없다는 허점도 있다. 보이스피싱을 막을 수 있는 ‘통신제도 개선’, ‘금융제도 개선’ 모두 대면편취 범죄에 대해선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셈이다.
이 때문에 국회에는 대면 편취 범죄도 전기통신금융사기의 범주에 포함해 다른 보이스피싱 범죄와 동일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이 발의된 상황이다. 다만 이 법안은 아직 계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