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비의 문화재 읽기]조선왕실 상징 '어보'의 해외반출 이유는?

왕족 죽은 뒤 종묘에 안치한 의례용 인장
현재까지 46점 소재 불분명
"기부 환수 독려할 방법 필요해"
  • 등록 2020-06-22 오전 6:00:00

    수정 2020-06-22 오전 6:00:00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종묘에는 왕실 권위의 상징인 어보(御寶)를 보관하고 있다. 어보는 왕족이 죽은 뒤 종묘에 안치하기 위해 제작한 의례용 인장이다. 왕세자와 왕세자빈을 책봉할 때, 왕과 왕비에게 존호(덕을 기리기 위한 칭호)와 시호(사후에 공덕을 칭송하기 위해 짓는 이름)를 올릴 때, 왕을 추존(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거나 폐위된 왕을 사후에 왕으로 올릴 때)할 때 올린 지위와 호칭을 새겨 제작했다. 실제 사용하거나 물려주지 않고 종묘에 안치한 어보는 조선 왕실의 대를 영원히 이어간다는 영속성을 담았다.

2017년 미국과 문화재청의 국제 공조로 환수한 문정왕후어보(왼쪽)과 현종어보(오른쪽) (사진=국립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은 6·25 70주년을 맞이해 전쟁 속에서 미국으로 반출됐다가 2017년 돌아온 ‘현종어보’와 ‘문정왕후어보’를 홈페이지를 통해 특별 공개했다. 현종어보는 조선 18대 왕 현종(1659~1674)을 왕세자에 책봉하면서 만든 어보로 옥으로 제작됐다. 인면에는 ‘왕세자지인(王世子之印)’이라고 새겨져 있다. 문정왕후어보는 중종(1506~1544)의 두 번째 왕비인 문정왕후(1501~1565)에게 ‘성렬(聖烈)’이라는 존호를 올리면서 만든 금보다. 손잡이는 둘 다 거북 모양을 하고 있다.

어보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혼란을 겪으며 국외로 불법 반출된 후 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상당수다. 국립고궁박물관과 문화재청에 따르면 조선왕조실록과 등기록에 따르면 현전 어보는 330여과이고, 소재가 불분명한 상태의 어보는 46과다.

특히 한국전쟁 때 미군에 의해 반출된 것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까지도 어보를 지속적으로 관리한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1924년 제작된 ‘종묘영녕전책보록’과 1943년에 제작된 ‘종묘지초고’에는 어보의 수량과 위치를 기록해 놨다. 여기에는 2015년 반환된 ‘덕종어보’, 2017년 환수된 ‘문정왕후어보’와 ‘현종어보’의 기록이 있다.

반면 김재원 초대국립박물관장의 저서 ‘경복궁의 야화’에 따르면 8·15 광복 이후 조선 총독부 청사가 미군정에 의해 중앙청이 되고 바로 옆에 위치한 경복궁 안에는 미군 막사 22개 동이 들어섰는데 당시 밤마다 기념품 사냥꾼이라 불린 미군이 경복궁을 드나들면서 문화재를 가져간 것으로 전해진다. 1952년 2월 18일 경향신문에는 미군 병사가 서울 청계천 부근 골동품점에서 단종과 단종비 정순왕후 어보를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고 경찰과 헌병이 압수해 국립중앙박물관에 인계했다는 기사도 실렸다.

문화재청은 공조·수사·협상·기증 등을 통해 미국으로 반출된 어보를 환수하고 있다. 올해 2월에 재미 교포의 기증으로 ‘효종어보’가 국새 ‘대군주보’와 함께 국립박물관에 왔다. ‘문정왕후어보’와 ‘현종어보’는 문화재청과 미국 이민관세청(ICE), 국토안보수사국(HSI)의 수사 공조 덕에 2017년 국립고궁박물관으로 돌아왔다. 이 외에도 현재까지 어보 총 9과가 국내로 왔다.

하지만 어보 환수에는 여전히 어려움이 따른다. 김병연 문화재청 국제협력과 사무관은 “문화재 환수는 기록과의 싸움을 선행해야 하는데 어보가 언제 어디로 반출됐는지 기록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미국과 수사공조는 건별로 이뤄지고 있어 접근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문정왕후어보’와 ‘현종어보’를 직접 가져왔던 서준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사는 “해외 박물관, 경매 사이트를 수시로 확인하는 것 말고는 달리 소재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서 학예사는 현종어보를 발견했을 때를 직접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하루는 밤에 웬 동영상 하나가 와서 봤는데 우리나라 문화재를 수집하는 미국인 로버트 무어가 캐비닛을 열더니 테이블에 무언가 하나 툭 던지더라”며 “한눈에 현종어보라는 것을 알아보고 내 마음도 같이 쿵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들은 기부를 통한 문화재 환수가 더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독려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서 학예사는 “공조를 통한 방법은 적극적이긴 하지만 유물을 몰수해서 가져오는 형태여서 소장자 입장에서는 다소 불편할 수 있다 ”며 “국가에서 금전적 보상은 아니더라도 예우를 갖춰주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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