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언뜻 ‘당황스러운’ 형체가 눈에 띈다. 주택공사현장에서나 볼 수 있는, 그것도 이미 용도가 폐기된 물건들 말이다. 플라스틱 망, 깨진 유리, 떨어져나온 바닥재 같은. 어쩌다가 이들은 여기 캔버스 위에 다닥다닥 모이게 됐을까.
바로 작가 이정호(36)가 관심을 가진 ‘혼돈과 질서가 어우러진 장면’ 때문이란다. 그 관심을 형상화하기 위해 작가는 공사현장, 쓰레기더미, 작업실 바닥의 얼룩이나 자국에 주목했고, 거기서 직접 뜯어낸 조각을 가져다가 화면에 붙이고 색을 입혔다. 엉겨붙은 혼돈의 집합체에서 미적인 질서를 끄집어내는 거다.
연작 중 한 점인 ‘바닥에 자국들 Ⅳ’(Stains on the Floor Ⅳ·2020)은 그 의도와 과정이 맞물린 작품. 시커멓고 반질한 규칙을 완성했다.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팔판길 학고재디자인│프로젝트스페이스서 여는 개인전 ‘나에게 보이는 흔적들’(The Stains That I See)에서 볼 수 있다. 린넨에 아크릴릭. 56×61㎝. 작가 소장. 학고재디자인│프로젝트스페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