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악’ 쓰고 ‘치’ 떨며 오른 치악산, 쉬엄쉬엄 즐기다

한국의 3대 악산 중 하나인 치악산을 오르다
치악산을 가장 쉽게 오르는 길 ‘큰무레골~비로봉’
치악산 산허리 두른 둘레길에선 쉬엄쉬엄 산책
  • 등록 2021-11-12 오전 8:03:01

    수정 2021-11-12 오전 11:03:54

치악산 비로봉 정상과 미륵불탑


[원주(강원)=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한국에는 3대 ‘악산’이 있다. 설악산(雪嶽山), 월악산(月岳山), 치악산(雉岳山)이다. ‘악’자 한자는 다르지만, 다 큰 산이라는 뜻이다. 치악산을 올라가 본 사람은 알 수 있지만, 1288m라는 높이보다 무척 힘든 산이다. ‘악(岳)자 붙은 산은 험하다’는 속설을 증명하듯 원주 사람들은 ‘치를 떨고 악을 쓰며 오르는 산’이라 말한다. 정상을 가려면 어느 정도 각오를 다져야 한다. 등산로 선택이 중요한 이유다. 자신의 취향과 체력에 맞는 등산로 선택이 필요하다. 치악산을 오르는 코스는 순한 길로 느릿느릿 오래 걷거나, 한순간 고통을 참아내며 빠르게 오르는 길도 있다. 정상까지 오르지 않아도 좋다. 부담이 덜한 고갯길이나 마을과 마을을 이은 아름다운 둘레길을 걸어도 치악산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어느 길이든 자신이 즐겁고 만족스러우면 치악산을 즐기는 최고의 방법이다.



악을 쓰고, 치를 떨며 비로봉에 오르다

치악산은 서쪽으로는 강원도 원주, 동쪽으로는 횡성과 접해있다. 서울에서 차로 2시간 넘게 걸린다. 1984년 16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주봉인 비로봉(1288m)을 비롯해 1000m가 넘는 봉우리가 많고 계곡도 가팔라 험하기로 유명하다. 산을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다. 가장 악명 높은 등산로는 사다리병창길이다. 입석대나 영원사, 상원사를 들머리로 하는 산행도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나마 쉬운 등산로는 횡성 방면의 부곡탐장지원센터를 들머리로 삼는 것이다. 이곳에서 큰무레골~비로봉으로 이어지는 코스는 치악산 정상으로 가는 가장 완만한 탐방 코스다.

해가 뜬 무렵, 치악산 정상에서 바라본 모습


새벽 4시에 호텔을 나섰다. 원주 시내에서 횡성 부곡까지는 1시간 정도 거리다. 깜깜한 어둠 속을 뚫고 부곡탐방지원센터 앞 주차장에 도착했다. 또 다른 산행객은 서둘러 길을 떠났다. 간식거리와 장비를 챙겨 서둘러 산행을 시작했다. 늦가을 새벽바람은 차가웠다. 하늘 구름 사이로 별들이 총총했다. 정상 일출을 위해 길을 재촉했다. 칠흑처럼 어두운 밤길. 오로지 핸드폰 불빛에만 의존해 발을 내디뎠다.

탐방지원센터에서 큰무레골 탐방로 전까지는 평탄한 숲길이라 그나마 부담스럽지 않다. 본격적인 산행은 큰무레길 탐방로부터다. 천사봉까지 오르막길이 계속 이어진다. 때로는 잘 다듬어진 길을 오르고, 때로는 울퉁불퉁한 길이 이어진다. 천사봉을 앞에 두고 오르는 계단 길에서는 숨이 조금 가빠온다. 어느새 사위는 밝아왔고, 하늘의 별들도 사라졌다. 산길이 제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기 시작하자 길옆의 나무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해가 뜬 직후 치악산 비로봉에서 바라본 모습


계단길이 끝나는 지점, 처음으로 시야가 탁 터지는 곳에 오른다. 천사봉이다. 계단길 끝 전망대 앞 나무 의자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전망대 앞에선 최종 목적지인 비로봉과 미륵불탑이 조그맣게 보인다.

천사봉에서 비로봉 바로 아래까지는 완만한 능선길이다.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거의 없어 그리 큰 힘 들이지 않고 걸을 수 있다. 정상을 눈앞에 두고 저 멀리 동쪽에서 해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비로봉과 불과 100m 정도 떨어진 거리. 비록 정상은 아니지만, 나뭇가지 사이로 떠오르는 해를 잠시 감상하고 다시 발을 내디딘다.

비로봉에 오르면 가장 먼저 미륵불탑이 보인다. 남쪽에 있는 탑은 ‘용왕탑’, 중앙에 있는 탑은 ‘산신탑’ 그리고 북쪽에 있는 탑은 ‘칠성탑’이라 부른다. 이 탑은 원주에서 제과점을 운영하던 용창중(용진수)이란 분이 쌓았다고 전해진다. 비로봉 정상에 3년 안에 3기의 돌탑을 쌓으라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게 1962년부터 1964년까지의 일이었다. 이후 1994년 두 차례에 걸쳐 벼락을 맞아 무너진 것을 치악산국립공원 사무소에서 복원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탑 너머로 남대봉까지 이어지는 치악산 주릉도 역동적이다.

치악산둘레길 11코스 한가터길


쉬엄쉬엄 치악산 산허리를 걷다

치악산 산허리를 도는 둘레길도 새로 놓였다. 둘레길 전체 길이는 무려 139.2㎞. 이 길을 짧게는 7㎞에서 길게는 26.5㎞까지 11개 코스로 나눴다. 일부 구간은 새로 길을 만들고 기존의 등산로와 샛길, 마을 길을 연결했다. 둘레길 곳곳마다 소박한 삶의 체취와 역사의 숨결을 만날 수 있는 이유다. 도보여행자들의 편의를 위해 코스마다 코스안내표식, 길잡이 띠, 스탬프 인증대를 설치했다.

마지막 코스인 11코스 ‘한가터 길’은 아직 공사 중이다. 숯돈골과 한가터를 거쳐 국형사까지 크고 작은 고개와 능선을 경유하는 길이다. 한가터란 명칭은 크다는 뜻의 ‘한’에 집 ‘가’(家)자를 쓰는 마을 이름에서 따왔다. 풍경이 아름답고 걷기에 부담이 없는 길이다. 치악산 자락의 맑고 깨끗한 계곡도 많아 다채로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치악산 둘레길 11코스 한가터길


11코스는 전체가 아닌 일부 구간을 걸었다. 11코스 종점인 국형사에서 한가터 삼거리까지. 사실 더 걷고 싶어도 출발점인 숯돈골부터 한가터까지 공사 중이라 불가능했다. 국형사 앞에서 출발하자 길은 철 난간이 있는 계단을 딛고 가파르게 오른다. 계단이 끝나는 지점부터는 오솔길이다. 대부분 평지에 가깝거나, 내리막길이라 걷기에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여기에 일부 구간에선 야자매트까지 깔아놓아 편안할 정도다.

1시간쯤 걷자 한가터 삼거리다. 빽빽한 잣나무 숲이 나타났다. 화전민을 내보내고 1984년 조성했다고 하니 대략 40년이 다 된 숲이다. 11코스는 여기까지만 걸을 수 있다. 한가터 삼거리부터 섭재슈퍼까지 잣나무 숲 한가운데로 이어지는 숲길 구간은 아직 조성 중이기 때문이다.

치악산 탐방로 중 가장 인기가 많은 구룡사지구


치악산 탐방로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은 구룡사지구다. 구룡사에서 비로봉까지 오르는 등산로도 인기지만, 볼거리도 많아서다. 구룡사 매표를 지나 구룡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황장금표와 굽이굽이 금송길이 펼쳐지는 구룡 테마 탐방로다.

원통문과 사리를 모신 부도를 지나 1㎞ 남짓한 숲길을 걷다 보면 구룡사에 도착한다. 서기 668년(신라 문무왕 8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구룡사 가는 길은 계곡도 아름답고, 길도 경사가 없어 산책을 즐기며 걷기에도 그만이다. 사천왕문을 지나면 보광루와 대웅전 등의 경내 모습이 보인다.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절 내의 건물들은 대부분이 강원도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의 보광루는 그 규모로도 고창의 웅장함을 보여준다.

구룡사 계곡을 따라가면 2단으로 휘어져 떨어지는 환상적인 물줄기도 만날 수 있다. 치악산을 대표하는 세렴폭포다. 세렴폭포 갈림길에서 다리를 건너 비로봉 계곡로를 따라 다시 150m 정도 올라가면 칠석폭포가 있다. 가볍게 다녀올 요량이라면 여기까지가 좋다. 그 이상 오르면 정상까지 ‘악’쓰며 올라야 한다.

구룡사 세렴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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