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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라고 표현했을까? 임신부석은 예비 엄마와 뱃속의 아기를 위한 자리다. 뱃속의 아기는 우리의 미래를 끌고 나갈 소중한 인재들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하지만 뱃속 아기가 ‘내일의 주인공’이라면, 임신한 여성은 ‘오늘의 주인공’이다. 이들은 누군가의 소중한 딸, 며느리, 누이다. 또는 아내이거나 연인이다.
내일의 주인공인 태아가 건강하게 태어나게 해주는 것은 현 세대의 의무이다. 하지만 우리가 배려해야 할 첫 번째 대상은 오늘의 주인공인 임신한 여성들이 돼야 하지 않을까?
지난 1980년대 후반 네덜란드의 남성들 중에서 일부 연령대에서 당뇨병, 심혈관 질환, 우울증 등의 유병률이 유난히 높다는 사실이 보고된 바 있다. 형제, 자매들이 여러 명인 경우에도 유독 그 연령에만 특이한 현상이 나타난 데 대해 전문가들이 주목했다.
그 이유를 규명하기 위한 연구 결과 최근 흥미로운 사실이 확인됐다. 당뇨병, 심장병이 유독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1945~1946년에 태어난 것이다. 1944년 9월 영국은 그 해 연말까지 2차 대전을 끝내겠다는 목표로 대규모 공격을 감행했으나 실패했다. 이 작전 이후 독일은 점령지였던 네덜란드 일부 지역에 대한 식량배급을 대폭 줄여버렸다. 하루 1000kcal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극심한 식량난은 그해 겨울을 지나 이듬해 5월 종전 때까지 이어졌다.
이 때 어머니의 뱃속에 있던 아기들도 영양실조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1945~1946년에 태어난 아기들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혹독한 겨울을 지냈던 것이다. 이 아기들은 성인이 돼서도 당뇨병 등 여러 질병에 훨씬 취약하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인간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요인은 유전과 환경이다. 네덜란드 연구가 나온 뒤에야 인간의 건강 요건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는 임신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듯하다.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은 여직원이 많은 직종이다. 그러다보니 임신한 직원들도 많다. 병원을 찾는 대부분의 환자나 보호자, 병원 직원들은 임신부를 잘 배려한다. 하지만 임신한 여직원에게 말을 함부로 하고 심지어 화를 내는 환자와 보호자도 간혹 있다. 본인이나 가족이 몸이 아파 힘든 줄은 알지만, 임신한 병원 직원을 배려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야속할 때가 있다. 임신 후반기에 들어 겉으로 표가 나면 그나마 사정은 좀 낫지만, 초기 임신부들은 무방비일 때가 많다. 그래서 임신 여부를 알려주는 배지나, 목걸이 착용 방안을 놓고 직원들과 논의하고 있다. 병원 직원들에게도 임신부는 예의를 갖춰 대하고 배려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임신부를 배려하고 예의를 갖춰 대하는 사람들이 늘었으면 한다. ‘오늘의 주인공’인 임신부가 행복해야 ‘내일의 주인공’인 아기들도 행복하다.
<윤도흠 세브란스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