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지환 ‘이래야 사람이지-독서’(사진=갤러리그림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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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나체의 나무인형이 돌아왔다. 빈 몸뚱이지만 내부엔 AI 장치가 들어 있는 듯한 똑똑한 실체. 취미는 독서, 특기는 책정리쯤 될까. 그 방대한 읽기로만 따져보면 사람이 아닌 건 분명하다. 그런데 이제야 사람다워 보이지 않는가. 책을 읽다가 곤히 잠들었으니 말이다.
작가 이지환이 고민하는 건 사실 나무인형의 정체성이 아니다. 사람의 정체성이다. 생각하고 휴식하고 기도하고 독서하는, 인간의 행태를 즐기는 형상을 데려다 놓고 진짜 인간이 놓친 게 뭔가에 대한 경각심을 자극하려 해왔단 얘기다. 기계와는 다르다고 굳게 믿는 인간에게 울리는 경종이라고 할까. 덕분에 작가가 줄곧 고집하는 작품명 ‘디스 이즈 어 휴먼’(This Is a Human)에 대한 해석도 자유롭다. ‘이것은 인간’이기도 하고 ‘사람인 척’이기도 하니까.
결국 ‘이래야 사람이지-독서’(2021)에까지 왔다. 드디어 “인간과 AI, 두 존재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지점을 드러내려 했다”던 작가의 의도가 비로소 살아난 듯하다. 장지에 올린 특유의 부드러운 묘사와 은근한 색채가 열 일을 했다.
10월 4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10길 갤러리그림손서 강형구·이명호·채성필·황나현과 여는 5인 기획전 ‘사고의 다양성’에서 볼 수 있다. 장지에 채색. 162.2×130.3㎝. 작가 소장. 갤러리그림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