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을 사고 되려 돈을 받는다. 말도 안 되는 상상 같지만, 이론상으로는 한때 현실이 됐다.
지난 21일 국제유가가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가 됐기 때문이다. 이후 며칠 연속 급반등하고 있지만 저유가 기조는 이어지고 있다. 24일 기준 국내 휘발유 소비자가는 ℓ(리터)당 전국 평균 1288원으로 올해 첫날 가격(1559원)보다 17.4% 낮아졌다. 1월부터 이어진 하락세가 저점을 찍은 것.
국제유가 하락에 따라 가격을 낮춘 주유소가 많지만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생각만큼 기름값이 싸지 않다는 불만이 나온다. ‘마이너스 유가’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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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주유소 기름값은 여전히 비싸다’는 이야기는 틀린 말이 아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역 차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ℓ당 1381원으로 전국 평균(1287원)보다 7.3% 높다. 전국 주유소 중 가장 비싼 곳은 ℓ당 2069원이다.
그러나 주유소끼리 경쟁을 하더라도 휘발유 값은 일정 수준 이하로는 떨어질 수 없는 구조다. 전체 휘발유 가격에서 원유 가격은 10%에 불과하지만 유류세 비중이 60% 이상 차지하기 때문이다.
국내 휘발유 판매가격이 ℓ당 1330원(4월 3주 평균가격)이라면 유류세, 수입부과금, 부가세 등 세금이 888원, 국제유가가 155원이고 이를 더하면 1043원이다. 나머지 287원 가량이 주유소와 정유소의 유통비용과 수익이다. 결국 소비자가격은 1043원 아래로는 절대 떨어질 수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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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런 요인들을 고려해도 소비자들은 최근 국내 휘발유 판매가격의 인하폭이 아쉽기만 하다.
소비자단체인 E컨슈머의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은 ‘국제 유가 하락폭 대비 국내 휘발유 가격은 적게 인하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감시단은 지난달 30일 발표한 ‘2020년 2~3월 석유 시장 분석보고서’에서 3월 국제휘발유 가격은 ℓ당 약 173원 인하한 것에 비해 국내 주유소 판매가는 89원밖에 내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3월의 국제유가 폭락이 반영된 4월 소비자가를 살펴봐도 인하 폭이 크다고 볼 수 없다고.
감시단 관계자는 24일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감시단에서 분석한 국내 휘발유 가격 구조를 설명하며 “정유사 유통비용·마진은 2018~2019년 평균 36~38원이었는데 4월 3주는 134원, 4주는 114원이다”면서 “이 기간 산유국에서 사오는 가격이 각 155원, 164원인 것을 고려하면 과도하게 높다”고 강조했다.
이어 “저유가 사태로 정유업계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은 알지만 그 어려움을 소비자에게 전가해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