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2000's] 굿바이 조던, 헬로우 카터

  • 등록 2013-07-09 오후 4:28:49

    수정 2013-07-09 오후 4:38:57

▲ 빈스 카터 속한 댈러스 매버릭스 구단 로고


[이데일리 e뉴스 박종민 기자] 2000년대 중반 조쉬 하워드, 마퀴스 다니엘스와 함께 댈러스 매버릭스의 ‘영건(Young Gun) 3인방’으로 불리던 데빈 해리스가 친정팀으로 복귀한다. 해리스는 7일(한국시간) 댈러스와 3년간 900만 달러에 계약했다. 이로써 그는 과거 함께 뛰었던 덕 노비츠키, 빈스 카터 등 대선배들과 다시 호흡을 맞추게 됐다.

특히 카터와의 인연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카터는 뉴저지 네츠 시절 해리스에게 득점을 양보하며 그의 성장을 도왔다. 실제로 2008~2009시즌 해리스의 평균 득점은 21.3점으로 생애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당시 카터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었다. ‘캡틴’ 제이슨 키드가 이적한 상황에서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는 ‘진정한 리더’라는 평가와 지나치게 이타적이고 소극적인 것이 아니냐는 평가로 나뉘었다.

카터의 농구인생에서 전환점이었다. 카터는 평균 20.8득점을 기록한 그 시즌을 끝으로 롤플레이어 역할을 받아들였다. 그는 올랜도 매직과 피닉스 선즈, 댈러스에서 30분도 채 안 되는 출장시간에도 불만을 나타내지 않았다. 오티스 스미스 올랜도 단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카터는 연습장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선수다”라며 그의 성실함을 칭찬했다.

▶ ‘게으른 천재’ 꼬리표는 오명?

카터는 동시대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던 코비 브라이언트에 비해 ‘게으른 천재’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카터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지만 게으르지는 않았다. ‘게으르다’는 오해는 그의 성격과 ‘태업’에서 비롯됐다. 승부처의 상황에서 상대편 선수와 얘기를 주고받으며 웃음을 보이는 그의 모습은 늘 팬들에게 ‘승부욕이 없다’는 인상을 심어줬다.

하지만 ‘승부욕의 화신’ 마이클 조던도 시카고 불스 시절 플레이오프 경기 접전 상황에서 종종 상대 팀 선수와 얘기를 나누며 웃음을 보였다. 팀 내 다른 선수가 중요한 자유투를 시도하고 있을 때 조던이 하프라인 근처에서 상대편 가드와 얘기를 나누며 웃고 있는 모습이 중계화면에 포착되기도 했다.

2004~2005시즌 초반 카터의 태업은 팬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줬다. 카터는 토론토 랩터스의 신임 단장 선정 과정에서 줄리어스 어빙을 추천했지만, 자신의 의견이 묵살되자 팀 운영진과 대립각을 세웠다. 새로 합류한 롭 밥콕 단장은 카터를 굳이 잡지 않겠다는 뉘앙스의 발언으로 카터의 입지를 더욱 줄어들게 했다.

브라이언트가 소속팀 LA레이커스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다른 대우였다. 앞서 샘 미첼 감독과의 마찰도 태업의 한 이유로 알려졌다.

토론토는 지난 2010년 창단 15주년 행사 때 ‘화해의 의미’로 구단 최초의 프랜차이즈 스타 카터를 초대했지만 카터는 이를 거절했다. 토론토를 떠난 지 10년이 다 돼 가지만 카터의 앙금은 여전히 남아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내막이 어떻든 카터의 태업은 팬들에게 용서받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그의 선수생활에서 가장 큰 오점으로 남을 전망이다.

▶ 조던 이후 최고의 인기 스타

“잘 가라. 조던! 카터야 환영한다! (Goodbye MJ, Hello VC)”

한 농구팬이 들고 있던 피켓 문구가 경기 중계 화면에 잡혀 화제가 된 바 있다. 조던이 은퇴한 직후인 1998~1999시즌 카터의 등장은 농구계에 커다란 충격을 줬다.

조던과 같이 노스캐롤라이나대학 3학년 과정을 마치고 프로 무대에 뛰어든 카터는 뛰어난 체공력과 화려한 덩크로 농구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는 1998년 미국프로농구(NBA)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5순위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지명됐지만, 대학 동기 앤트완 재미슨과 맞트레이드되며 토론토에서 뛰게 됐다.

카터는 데뷔 첫 해 96.6%(114/118표)의 압도적인 지지율로 신인왕에 올랐다. 2000년 올스타전 전야제 슬램덩크 콘테스트에서 360도 윈드밀 덩크와 허니딥(팔꿈치 덩크), 비트윈 더 렉(공중에서 다리사이로 볼을 넣은 뒤 시도하는 덩크), 자유투 라인 덩크 등 역사상 최고 난이도의 덩크를 선보이며 덩크왕으로 선정됐다. 카터는 1970년대 줄리어스 어빙과 데이빗 톰슨, 1980년대 마이클 조던과 도미닉 윌킨스, 1990년대 숀 켐프에 이어 ‘최고 덩커’의 계보를 잇게 됐다.

올스타전 직후인 2월 27일 카터는 피닉스 선즈와의 홈경기에서 51득점 9리바운드 3스틸을 기록, 미국 전역의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그 경기는 미국 주요 방송사인 NBC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다. 카터의 경기 소식은 CNNSI 뉴스 초반부에 등장하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농구 변방 토론토의 경기가 스포츠 뉴스에서 메인으로 보도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카터의 소식을 설명하던 여자 아나운서는 ‘쇼킹(Shocking)’을 연발했다.

카터는 2000~2001시즌 플레이오프 동부 컨퍼런스 준결승에서 앨런 아이버슨과 역사에 남을만한 대결을 펼쳤다. 아이버슨이 2차전과 5차전에서 각각 54, 52점을 몰아넣자, 카터는 3차전과 6차전에서 각각 50, 39점을 폭발시켰다. 하지만 카터는 7차전 종료 직전 마지막 공격 기회에서 중거리슛을 놓치며 87-88 한 점차 패배를 당했다. 카터의 슛이 불발되면서 토론토는 창단 첫 컨퍼런스 결승 진출 기회를 날렸다.

조던(9회)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카터도 어빙과 함께 통산 4차례나 올스타 최다득표를 기록했다. 전국구 인기 스타로 명성을 날리던 그는 2002년과 2003년 각종 부상에 시달리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2004~2005시즌 중반 뉴저지 네츠로 이적해 키드와 함께 팀을 극적으로 플레이오프에 올려놨지만, 이후부터는 더 이상 ‘슈퍼스타’의 면모를 보이지 못했다.

올스타 기량을 유지하던 카터는 2009년 이후 올랜도, 피닉스, 댈러스로 팀을 옮겼다. 댈러스에서 노비츠키와 호흡을 맞춘 지난 시즌 주로 키 식스맨 역할을 수행하며 평균 13.4득점을 올렸다.

한편 카터는 2010년 미국 플로리다주 지역신문 올랜도센티넬과의 인터뷰에서 “15년 차까지 뛰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올해 데뷔 15년 차인 카터는 생애 통산 2만2223점(역대 27위), 3점슛 성공 개수 1663개(역대 11위)를 기록 중이다. 수준급의 외모와 화려한 농구실력으로 코트를 수놓았던 카터의 모습을 지켜볼 날도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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