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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는 폭력의 가해자를 향한 복수 그 자체가 개인의 꿈이 되어버린 아이러니를 그린 작품이다. 온몸에 고데기 화상 흉터로 얼룩진 소녀가 어른이 돼 가해자에게 일생의 복수를 펼치는 내용이다. 지난해 12월 30일 파트1을, 이달 10일에는 파트2를 방영하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방영 후 거센 후폭풍이 일었다. 그간 우리 사회 고질적 병폐로 지적됐던 학교 폭력(이하 학폭)이 재조명받으며 사회적 관심을 고무시켰다. 섬세하게 재현된 드라마 한 편으로 촉발된 사회적 관심은 학폭 문제가 있는 아들을 둔 아버지를 주요 공직에서 낙마시켰고,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승승장구하던 한 참가자를 끌어내리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도 학폭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등 제도를 보완하고 있다. 잘 만든 드라마가 가져온 우리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다.
공개 나흘 만에 글로벌 1위… 개인적 차원에서 맞닥뜨려야 했던 학교 폭력
14일 OTT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 패트롤에 따르면 13일 기준 ‘더 글로리’는 넷플릭스 TV쇼 부문 글로벌 1위를 차지했다. 파트2가 공개된 이후 3일 만이다. 2006년 청주 고데기 학폭 사건을 떠올리게 한 이 드라마는 충격적인 실화 이외에도 학폭에 담긴 계급적 요소를 담아내 주목받았다.
드라마의 줄거리는 이렇다. 어린 시절 박연진(임지연 분)과 그 무리로부터 당한 학폭에 온몸의 화상 흉터가 남게 된 문동은(송혜교 분)은 자퇴를 하며 개인적 복수를 한다. 문동은 캐릭터는 개인적 차원에서 맞닥뜨려야 했던 학폭 피해자의 상징이다. 주변에 그를 보호해 주는 어른은커녕 제도 밖에 놓인 철저한 약자였다. 반면 가해자이자 강자로 묘사된 박연진은 막강한 지위와 재력으로 보호받는 인물로 어른이 되어서도 화려한 삶을 누린다. 등장인물 간의 이런 차이는 동은의 복수에 통쾌함을 불어넣는 결정적인 소재로 쓰였다.
실제로 고데기 사건으로 극에 등장한 1990~2000년대 초반은 학교 폭력 문제가 지금처럼 부각되지 않았다. 2004년 7월 말에서야 ‘학교폭력예방법’으로 불리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고 학교폭력 예방 대책 차원에서 마련한 학교전담 경찰관 제도도 지난 2012년에 도입됐다. 사회적 안전장치가 부족했던 1990~2000년대 초반은 우리 사회 곳곳에 문동은이 있었던 셈이다. 이에 당시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했던 이들의 학교 폭력 피해 고백이 잇따랐다. 급기야 ‘더 글로리’ 연출을 맡은 안길호 PD를 향한 학폭 의혹까지 제기됐다. 작가적 상상에 더해진 현실의 문제를 담은 드라마가 현실을 사는 각자의 삶에 투영되면서 나타난 변화였다.
사회적 이슈가 된 학교 폭력… 정부 제도 보완·강화 나서
드라마의 열기에 이어 학교 폭력이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자 정부 역시 제도 보완, 강화에 나섰다. 공교롭게도 국가수사본부장에 내정됐던 정순신 변호사가 낙마하는 사건까지 터졌다. 아들의 학교 폭력 문제가 드라마 흥행과 동시에 불거졌기 때문이다.
교육 현장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최선희 푸른나무재단 본부장은 “실제 드라마 ‘더 글로리’를 통해 사회적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는 게 현장에서도 느껴진다”면서 “사실 학기가 시작하는 시기에는 상담 문의가 보통 소강상태인데 올해는 그렇지 않았다. 학교 안, 현장에서 해결이 잘 됐다면 이렇게 고통받은 분이 없었겠지만 그렇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교육부가 대책을 고심 중이라고 하니 이번에야말로 제도를 잘 마련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드라마가 사회적 경각심을 일으켜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낸 선순환의 사례라는 평가도 나온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드라마는 당시의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면서 “드라마를 통해 사회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여주고 그것이 경각심을 일으켜 변화의 계기가 되는, 그런 선순환 구조가 매우 중요하다”고 짚었다.
정교하게 피해자들의 연대를 보여줬다는 점도 다른 드라마와 차별되는 점이다. 극 중 문동은은 남편의 가정 폭력에 노출된 강현남(염혜란 분)과 연대해 복수를 도모한다. 마지막에는 주여정(이도현 분)과 함께 새로운 복수를 향한 발걸음을 내디딘다. 공 평론가는 “피해자에 대한 섬세한 연출이 돋보이는 긍정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