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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김영환 기자] 북한의 핵물리학자 김명국 박사. 배역 설명만 보면 거창함이 느껴지는 인물이다. 그러나 SBS 월화드라마 `아테나:전쟁의 여신`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여기저기 납치당하기 바빴고 결국 이용가치가 없어지자 살해당했다.
김명국 박사 역할을 맡은 배우는 권범택이다. TV에서는 다소 생소한 이름. 연극 무대를 통해 잔뼈가 굵었고 최근 `마더` `의형제` 등의 영화에서 얼굴을 알렸다. 드라마에서는 조연도 아닌 단역으로 지나치듯 등장한 것이 전부였다.
이 때문에 `아테나`는 권범택에게 기회였다. 배역이 크지 않았지만 그마저도 감사했다. 한 때의 실패로 연기를 떠나야했던 과거가 있었다. 이를 벗어나는 길은 돌아돌아 다시 연기였다. 영화를 통해 조금씩 이어오던 연기와의 연은 드라마 `아테나`에까지 닿았다.
"처음 촬영할 때 대본에는 지문이 하나 밖에 없었죠. `김명국 박사가 NTS 요원을 따라 도피한다`는 내용이 전부였죠."
"매스컴에 많이 드러났던 것은 아니지만 그분의 모습에서 불안함, 고독함, 외로움 등이 느껴졌어요. 연기를 하는 데 필요한 모든 소스가 들어 있었던 거죠. 연기할 수 있는 모델이 있어 표현하기 수월했어요."
`아테나`로 TV 나들이에 나섰지만 연극판에서 권범택은 알아주는 배우였다. 연극배우로 서른 네살의 나이에 내 집 장만에 성공하기도 했다. 주변에서는 재벌이라고 권범택을 불렀다. 편하게 연극을 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잘못 선 보증 한 번이 권범택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영화를 제작하던 한 후배와 한 때 히트곡 제조기던 모 가수를 믿었지만 돌아온 것은 차압 딱지뿐이었다.
"그 때 배워둔 게 있죠. 한 겨울에도 따뜻하게 자려면 지하철 자판기 뒤가 최고에요.빨간 딱지가 붙을 때 심정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연극배우에겐 공연 팜플렛이 귀한 재산인데 불행히도 저는 그마저도 없네요."
그러다 2004년 배창호 감독의 영화 `길`에 캐스팅됐다. 제작 관계자로 있던 친구가 연이 됐다. 이후 이 영화를 계기로 `아라한 장풍 대작전` `차우` `마더` `의형제`까지 출연할 수 있었다. `배창호 감독`이란 이름이 큰 힘이 됐다.
그리고 드라마 `아테나`에까지 연기를 할 기회가 왔다. 권범택은 인터뷰 내내 "감사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그만큼 소중했던 기회였다. 권범택은 "TV를 통해 얼굴을 알리고 싶은 욕망이 있는데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며 솔직한 속내를 털어 놓았다. 이른바 `명품 조연`이 되고자 하는 바람이다.
"무대를 제작하고 싶어요. 뮤지컬을 제작하고 연출하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한국적인 미학은 아직 개척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돼요. 한국적이라는 게 전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퓨전적인 거죠. 동서양을 잇고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는 우리 얼을 소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