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준철의 스포츠시선] 정몽규·홍명보 국회 출석과 여론

  • 등록 2024-09-28 오후 12:25:17

    수정 2024-09-28 오후 12:25:17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24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축구 국가대표팀 홍명보 감독(왼쪽)과 이임생 대한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가 24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안준철 스포츠칼럼니스트] 스포츠와 정치의 관계는 무엇일까. 최근 국회에 출석한 체육 단체장들과 지도자들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그리고 과거와 다르지 않은 몇 가지 사실들과 희망적인 새로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24일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문체위) 현안 질의의 여운은 진하다. 22년 전인 2002년만 해도 평생까방권(까임방지권)을 얻은 듯했던 홍명보 남자 축구 A대표팀 감독은 이날 국회에서 죄인이 됐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이임생 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이 국회로 불려 간 이유는 축구 대표팀 감독 선임을 둘러싼 여러 의혹 때문이다. 비단 홍명보 감독의 선임만이 의제가 아니었고, 축구협회뿐만 아니라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김택규 대한배드민턴협회장, 김학균 배드민턴 대표팀 감독도 나왔다. 그러나 이날 현안 질의의 초점은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이 공정하지 못하고, 투명하지 못하며, 졸속으로 이루어졌다는데 맞춰졌다. 정몽규 회장, 홍명보 감독, 이임생 기술총괄이사는 문체위 소속 여야 의원들의 거센 질타를 받았다.

반면 이날 출석한 박문성 축구 해설위원과 박주호 전 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은 스타로 떠올랐다. 감독 선임 절차를 함께한 박주호 전 위원은 앞서 홍 감독 선임과 관련해 과정이 불투명하다고 자기 목소리를 냈다. 박문성 위원도 거침없이 자기 목소리를 내며, 축구협회에 대한 애정 어린 쓴소리를 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청문회나 다름없던 현안 질의를 통해서 확인한 것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여론(public opinion)의 기능이다. 정몽규 회장과 홍명보 감독을 국회로 불러낸 것은 여론의 역할이었다.

다만, 주류 스포츠 언론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일부 언론 보도를 보면, 스포츠 단체장, 지도자들이 국회로 불려 간 게 불편한 모양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단순 견해를 묻는 여론조사방식을 비판한 것을 ‘여론은 없다’라는 해석과 함께 우중(愚衆: 어리석은 대중)의 폐해로 치부하는 시선, 감독 선임 절차 자체에는 결정적인 흠이 없었다는 의견도 눈에 띄었다. 전문적인 전술과 기술 평가로 이루어지는 영역을 국회에서 다루는 과함을 지적하기도 했다.

물론, 과한 측면도 있다. 스포츠 협회나 연맹은 민간단체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나 국제축구연맹(FIFA)과 같은 국제스포츠기구에서도 정치의 스포츠 개입을 경계한다. 하지만 스포츠도 사회의 일부라는 점에서 국민의 대의 기관인 국회에 불려 나갈 수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이미 2010년 프랑스에서 당시 축구대표팀 감독이던 레몽 도메네크와 장-피에르 에스칼레트 프랑스축구협회장이 국회에 불려 갔다. 2010 남아공월드컵 조별리그 탈락과 대표팀 내분 사태 때문이었다. 여기에 도메네크 감독이 선수 선발에 점성술사의 조언을 활용한다는 의혹도 있었다. 정치의 개입을 금지한 FIFA가 월드컵 출전권 박탈 등의 징계를 거론하기도 했지만, 프랑스 의회는 ‘국내의 일’이라고 맞받아쳤다.

감독 선임에 있어서 결정적인 흠이 없다고 해도, 국회에서 들여다볼 수 있다. 협회 내부 규정과 실정법 위반이 있다면 법원의 판단을 받으면 된다. 국회에서는 합법이냐, 불법이냐를 가리는 게 아니다. 감독 선임 규정이나 절차가 불완전하고, 불투명하고, 불공정하다는 국민의 눈높이를 맞지 않는다면 국회에서 봐야 한다. 스포츠 배드 거버넌스(Bad Governance)를 통제하기 위한 여러 수단 중 하나라는 건 분명하다. 오히려 폐쇄적인 스포츠 거버넌스를 적절히 감시하고 견제하지 못한 언론의 기능에 대해서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또 하나의 분명한 사실은 스포츠인을 대하는 국회의원들의 태도이다. 6년 전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이후 불거진 야구대표팀 선발 과정에 대한 의혹을 해소한다며 선동열 대표팀 감독을 국회에 불러놓고 ‘금메달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다들 생각하지 않는다’, ‘사퇴하라’고 전문적이지 못했던 몇몇 의원들은 역시 국민의 질타를 받았다.

이후 한국야구위원회(KBO)나 야구인들에게 비판적이던 국민 여론은 바뀌었다. 이번 현안 질의도 6년 전과 비슷하게 흘러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6년 전만큼은 아니지만, 이번에도 말꼬리 잡기, 호통 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몇몇 문체위 소속 국회의원들이 있었다. 올림픽에 ‘호통치기’ 종목이 있다면 충분히 ‘금메달감’인 한 의원은 마이크가 꺼진 상황에서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전재수 문체위원장의 제지를 받았다. 또 다른 의원은 홍 감독과 이임생 이사가 만난 장소가 빵집인지, 카페인지에 집착했다. 사안의 본질을 흐리는 질의였다.

특히 체육인 출신 의원들의 질의는 실망, 그 자체였다.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질의를 하다가 이기흥 체육회장에게 지도를 받는 장면도 있었다. 아직도 자신이 체육인이라 착각하면서 체육인들을 옹호하는 듯했다. 체육인 출신이라는 전문성을 앞세워 날카로운 질의를 할 것이라는 기대는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희망적인 새로운 사실을 한 가지 확인할 수 있었다. 체육계 내부의 목소리이다. 홍명보 감독 선임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여론 악화는 전력강화위원이었던 박주호 위원의 용기 때문에 가능했다. 적절한 문제 제기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유튜버가 조회수를 노린 것이다’라고 공격하는 이들이 있다. 저열하기 짝이 없는 처사이다.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 체육계에 대한 국회 현안 질의였다. 하지만 여전히 축구가, 그리고 스포츠가 국민의 높은 인기와 관심을 받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부르디외는 여론조사방식을 비판했지만 다음과 같은 말도 남겼다.

“스포츠는 그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와 규범을 반영한다”

아직까진 스포츠가 우리 사회에 주는 ‘공정’이라는 가치가 살아 있고, 대중들도 그 공정이라는 가치를 중시한다는 사실을 확인해본다.

한국외대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전 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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