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논란 끝 동메달 확보…알제리 여성 복서 “혐오·괴롭힘 멈춰야” [파리올림픽]

“괴롭힘, 큰 영향 미쳐…메달 위해 이 자리까지”
알제리 시골 마을서 축구하다 복싱으로 전향
아버지, 인터뷰서 “칼리프는 여자아이로 자라”
오는 6일 태국 선수와 여자 66㎏ 준결승 올라
  • 등록 2024-08-06 오전 9:29:19

    수정 2024-08-07 오전 9:04:43

[이데일리 이재은 기자] 2024 파리 올림픽 여자 복싱 66㎏급 준결승에서 승리해 동메달을 확보한 알제리의 이마네 칼리프가 “전 세계 모든 이들에게 올림픽 원칙과 헌장을 지키고 모든 선수를 괴롭히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한다”고 말했다.

칼리프와 대만의 린위팅(28)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두 사람에 대한 올림픽 출전 가능 사실을 밝힌 뒤 성별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지난해 국제복싱협회(IBA)가 두 사람이 ‘성별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등 이유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실격 처리하거나 메달을 박탈한 상황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마네 칼리프가 2024 파리 올림픽 여자 복싱 66kg급 준결승에서 승리해 동메달을 확보한 직후 링 안에 걸터앉아 있는 모습. (사진=AP통신)
8강전 승리 후 “괴롭힘 자제해 달라…IOC가 정의 실현해줘”

칼리프는 4일 밤 AP통신의 스포츠 영상 파트너인 SNTV와의 인터뷰에서 아랍어로 “괴롭힘은 큰 영향을 미친다. 사람을 파괴하고 사람의 생각과 정신, 마음을 죽일 수 있다. 사람들을 갈라지게 할 수도 있다”며 “그래서 괴롭힘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한다”고 밝혔다.

다만 칼리프는 지난해 복싱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약물 검사 외 어떤 다른 테스트를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으며 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칼리프는 대회 기간 자신을 지지해준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며 “올림픽위원회가 제게 정의를 실현해준 것을 알고 있으며 진실을 보여준 이번 결정에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3일 여자 복싱 66㎏급 8강전에서 승리한 이후 진행된 이번 인터뷰에서 “저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며 “메달을 따고 경쟁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 분명히 저는 더 발전하고 나아질 것”이라고 했다.

또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관심을 알고 있지만 이 같은 외부 평가에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솔직히 소셜미디어를 잘 안 한다”며 “특히 올림픽에서는 정신건강을 관리해주는 팀도 있어서 저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이 소셜미디어를 자주 하지 않도록 관리해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가족과 연락하는데 가족이 내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가족이 큰 영향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이 위기가 금메달로 마무리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칼리프는 알제리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는 “이 문제는 모든 여성의 존엄과 명예와 관련돼 있다”며 “아랍인들은 수년간 저를 알고 있었고 IBA에서 저를 부당하게 대우했던 것을 봐왔다. 하지만 저는 신의 가호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칼리프, 복싱 전에는 축구서 두각 나타내

이날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칼리프는 알제리 북서부 시골 출신으로 복싱을 하기 전에는 축구를 해왔다. 이후 칼리프는 복싱하는 것에 대한 아버지의 반대를 극복하고 버스로 10㎞ 떨어진 거리까지 이동하며 훈련을 했다.

이 내용은 칼리프의 과거 기사에도 자세히 나와 있다. 지난 1월 31일 칼리프의 유니세프 대사 선임 이후 공개된 유니세프 기사에 따르면 그는 16세에 축구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자신에게 싸움을 거는 소년들의 주먹을 피하는 과정에서 복싱을 시작하게 됐다.

그러나 칼리프는 매주 훈련을 위해 10㎞ 거리의 다른 마을로 이동하고 버스 요금을 내야 하는 등 문제에 직면했다. 직접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칼리프는 재활용 고철을 팔았으며 어머니까지 거들어 쿠스쿠스를 판 뒤에야 정기적으로 복싱 훈련을 받을 수 있는 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

3년이 흐른 뒤 칼리프는 19세의 나이에 2018년 뉴델리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17위를 기록했고 2019년 러시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는 33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칼리프는 지난해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복싱 세계선수권대회에서 IBA의 자격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린위팅과 함께 경기에서 제외됐다.

IBA는 선수들의 개인정보를 공유할 수 없다는 규정 등을 이유로 구체적인 위반 사항은 성명에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우마르 클레믈프 당시 IBA 회장은 러시아 타스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두 선수가 ‘DNA 검사 결과 XY염색체’를 갖고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남성 염색체를 보유하고 있기에 여자 종목에 출전할 수 없다는 취지다.

당시 알제리 언론은 칼리프가 체내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아 실격됐다고 보도했으며 칼리프는 인터뷰에서 “알제리가 금메달을 따는 것을 원치 않는 국가들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이것은 음모”라며 “이에 대해 침묵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2024 파리 올림픽 여자 복싱 57㎏급 준결승에서 튀르키예 선수에 승리해 동메달을 확보한 린위팅. (사진=린위팅SNS)
IBA 회장 ‘XY염색체’ 발언 후 올림픽 출전 자격 부여되자 논란

다만 IBA가 IOC로부터 자격 정지 및 승인 취소 징계를 받고 파리 올림픽에서 복싱 경기를 주관할 수 없게 되며 상황은 뒤바뀌었다. IBA가 러시아 에너지 기업인 가즈프롬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재정 상황과 불공정한 심판 판정 등에 관해 충분히 해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후 IOC는 두 선수가 모든 IOC 규정을 준수했다며 여성 종목에 정상적으로 출전한다고 밝혔다. 마크 아담스 IOC 대변인은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에서 여성 부문에 출전하는 모든 선수는 대회 자격 규정을 준수한다며 “이들은 여권에 여성으로 기재돼 있고 여성이라고 명시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선수들은 수년간 여러 차례 대회에 출전한 경험이 있다.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라며 “트랜스젠더 사례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성명 발표에도 이탈리아 정치권은 칼리프와 맞붙었던 자국 선수 안젤라 카리니(25)의 안전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며 출전 자격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다만 지난 1일 칼리프와의 경기에서 46초 만에 기권해 논란에 불을 지핀 카리니는 경기 이후 칼리프와 악수하지 않은 것에 대해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경기 이후 칼리프의 아버지는 스카이 뉴스에 “내 자녀는 여자아이다. 칼리프는 여자로 자랐다”며 자신은 칼리프를 성실하고 용감하게 자라도록 키웠다고 밝혔다.

동시에 린위팅의 성별과 관련해서도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고 출생증명서에 그가 여성으로 적혀 있다는 대만 매체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한 대만 신베이시의회 의원은 타이페이 타임즈에 린위팅은 출생증명서상 여성으로 등록돼 있다며 “지난해 테스트 결과 염색체와도 관련이 없었다”고 했다.

지난 3일 66㎏급 8강전에서 헝가리의 안나 루처 허모리에게 5-0 판정승을 따내 준결승에 진출한 칼리프는 오는 6일 태국의 잔자엠 수와나펭과 준결승을 치른다. 린위팅은 지난 7일 여자 57㎏급 준결승에서 튀르키예 선수에 승리해 동메달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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