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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제공] "그거 알아요? 전 지금까지 남자한테 차이는 역할은 한번도 안 해봤어요. 찜질방에서 계란 까먹고, 노래방에서 춤추는 연기도 당연히 안 해봤고. 근데 이게 웬일이래요?"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음을 터트리는 탤런트 김미숙(50). 그녀는 오랫동안 우아한 여성의 표본(標本)이었다. 남편이 새파랗게 어린 여자에게 마음이 뺏겨 휘청거릴 때도('푸른 안개'), 자폐증 아들이 억장을 무너뜨려도('말아톤'), 연하남과 불륜에 빠질 때도('사랑') 꼿꼿함을 잃지 않았던 그녀다. 그런 그녀가 MBC TV 일일드라마 '사랑해, 울지마'에서 뽀글거리는 파마머리에 짙은 화장을 하고 어설픈 영어를 섞어 쓰는 '신자'를 연기하는 반전(反轉)을 택했다. 21세에 딸(이유리)을 낳자마자 언니(김창숙)에게 아기를 맡기고 혼자 미국으로 도망가버린 철부지 엄마 역할이다. 김미숙은 "이게 다 작가 선생님 때문이죠. 시쳇말로 말린 거예요"라고 했다.
극본을 맡은 박정란 작가의 회유법은 귀감이 될 만하다. 그는 김미숙에게 시놉시스를 보낸 후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단다.
"네가 신자 역을 해주면 참 좋긴 하겠어. 네가 하면 과장돼 보이지도 않고 재미도 있을 텐데…. 그런데 차마 꼭 해달라는 말은 못하겠다, 얘. 네 이미지도 있고. 무리하진 마…."
"기왕 하는 것 잘해야 하니까요. 그래도 거울은 잘 못 보겠어요. 하하."
"아이 낳고 나서야 그 말 뜻을 알았어요. 정말 우리 아들 얼굴에 티끌만한 상처만 나도 심장이 쿵 떨어지더라고요. 부부싸움 연기도 예전엔 차분하게 했는데, 결혼하고 나서 보니까 부부싸움은 정말 지옥인 거야. 다시 연기할 땐 진짜 전쟁을 보여줄 자신이 있어요."
다부지게 말하던 그녀. 그래도 기존 이미지가 아예 망가질까 걱정이 된 모양이다. "그 말 꼭 써줘요. 남자 팬들에게 너무 실망하지 말라고. 곧 돌아간다고. 이건 더 짙은 우아함을 위해 필요한 외출 같은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