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교에 화투판… '타짜'에 물든 학생들

영화·TV에서 도박꾼 주인공 나오며 유행

인터넷 카페 통해 사기도박 기술 배우기도
  • 등록 2008-11-17 오전 8:56:48

    수정 2008-11-17 오전 8:56:48

[조선일보 제공] 수능을 이틀 앞둔 지난 11일 서울 송파구의 한 고등학교 3학년 교실. 담임 김모(44) 교사가 들어서니 학생 6~7명이 무언가에 잔뜩 정신이 팔려 교실 한쪽 구석 책상 주변에 모여 있었다. 김 교사가 다가가 보니 학생들은 종이에 그려서 만든 화투로 노름을 하고 있었다. 두꺼운 종이에 문양을 그린 화투는 '광(光)'이라고 써놓은 것도 있었다. 그 학생들 중에는 부반장까지 포함돼 있었다.

김 교사는 "수능이 내일모레인 고3들이 교실에서 화투를 치고 있을 정도로 요즘 학생들이 화투 때문에 난리"라고 말했다.

서울 한 고등학교 한 학급에선 최근 학생들 소지품 검사를 했더니 화투가 6목이나 나왔다고 한다. 이 학급 담임교사는 "화투를 압수한 뒤 오후에 다시 보니 학생들이 종이로 만든 임시 화투로 계속 노름을 하고 있어서 기가 막혔다"고 말했다.

◆교무회의에서 '화투' 걱정할 정도

중·고등학교 교실이 최근 들어 도박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학생들이 학교에까지 화투를 갖고 와서 쉬는 시간마다 4~5명씩 짝을 맞춰 패를 돌리는가 하면, 휴일에는 학교 근처 공원에 모여서 화투를 치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화투 종목도 오락성이 있는 고스톱보다는 전문 노름꾼들이나 하는 '섰다'(화투 20장으로 하는 노름의 일종)'가 유행하고 있다.

지난 12일 오후 5시쯤 서울 도봉구 청소년문화센터 앞 야외공연장에선 고교생 10여 명이 노름을 하다가 근처 학교 교사에게 적발됐다. 이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쳐다볼 수 있는 공연장 한가운데에 버젓이 자리를 잡고 앉아 100원, 500원짜리 동전을 쌓아놓고 '섰다'를 하고 있었다.

당시 단속을 했던 서울 상계고등학교 생활지도부장 김정일 교사는 "예전엔 학생들이 노름을 하더라도 수학여행 때 호기심과 재미 삼아 화투를 치는 정도였는데 요즘엔 전문 노름꾼처럼 치면서도 도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학생들이 많다"고 말했다.

학생들 사이에 화투가 유행처럼 번지자 학교는 비상이 걸렸다. 교사들의 교무회의나 학생들의 조례·종례시간에 학생들의 '화투' 문제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서울 N고는 최근 교무회의에서 '화투 열풍'의 심각성을 알리고 각 담임 선생님들에게 특별 단속을 당부했다. 근처에 있는 S고는 매주 '교내에서 도박을 하면 안 된다'는 내용을 조례·종례 시간을 통해 학생들에게 교육하고 있다.

◆도박 가르치는 TV와 인터넷

학생들 사이에 화투가 번지기 시작한 것은 만화와 영화, TV드라마에서 전문 도박꾼인 '타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을 잇따라 내보낸 영향이 크다. 드라마의 경우 '19세 이상 관람가' 연령 제한 표시를 하고는 있지만, 중·고생들은 아무런 제약 없이 보고 있다.

네이버와 다음 등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타짜 기술'을 전수하겠다는 인터넷 카페가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있고 일부 카페는 회원수가 1만 명을 넘어섰다.

회원수가 3000명 정도인 한 카페는 UCC 동영상 등을 통해 사기도박 기술까지 가르쳐주고 있다. 예컨대 화투 패를 까는 척하면서 다른 화투로 바꾸는 기술과, 제일 윗장을 빼는 척하면서 밑장을 빼는 기술 등을 화면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일부 케이블 TV의 경우 도박의 부작용을 경고한다는 미명 아래, 전직 타짜를 등장시켜 손기술 등을 세밀하게 보여줘 사실상 노하우를 가르치는 방송을 하기도 했다.

서울 N고등학교 김모 교사는 "조폭을 다룬 드라마가 나오면 조폭이 되겠다는 아이들이 나오고 사채업자를 다룬 드라마가 인기면 '사채업자'가 장래희망이라는 아이도 나오지만 도박은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든 중독성이 있다는 점에서 그 부작용이 얼마나 클지 알 수 없다"고 우려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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