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수와 딥토크 1] "요즘은 한 수가 겨우 보일 정도"

  • 등록 2007-10-17 오후 12:42:01

    수정 2007-10-17 오후 11:52:01


[이데일리 SPN 김삼우기자] 수원 삼성과 2007 삼성 하우젠 K리그 최종 26라운드를 앞둔 지난 12일 오후 대전 월드컵 경기장. 대전 선수들이 강호 수원과의 결전에 대비한 훈련을 하고 있었다. 고종수(29 , 대전)도 있었다. 밝았다. 그리고 활기찼다.

미니게임을 하다 브라질 용병 슈바를 짖궂게 놀리는가 하면, 자체 연습 경기 중에는 용병들이 팀플레이를 하지 않는다고 타박하기도 했다. 의욕이 넘쳤다. 훈련을 마친 뒤에는 까마득한 후배들과 장난치는 모습도 보였다. 거침없고 재기발랄하던 한창 때의 고종수였다.

그리고 이틀 후 대전은 수원을 1-0으로 꺾고 드라마 같은 6강 진출을 이뤘다. 고종수는 대전의 경기를 조율하고 날카로운 패싱력을 과시하면서 풀타임을 소화했다. 지난 98년 K리그 르네상스를 주도하던 예전의 그를 떠올릴만 했다. J리그 적응 실패 후 K리그 유턴-수원 삼성 임의탈퇴-전남 이적 후 무적선수 전락 등 날개 없이 추락하기만 하던 그가 더 이상 아니었다. 1년 동안 팬들의 뇌리에 사라졌다 올 시즌 대전 유니폼을 입을 때만 해도 그의 재기를 기대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지난 몇 년 사이 실패와 좌절의 빈 공간이 너무 커 보인 탓이었다.

하지만 그는 살아나기 시작했다. 옛 스승 김호 감독이 새로 사령탑을 맡은 후반기 들어 서서히 출전시간을 늘리다 지난 9월 15일 FC 서울전에서 처음 풀타임을 소화한데 이어 22일 대구전 어시스트, 30일 전남전 득점 등으로 존재감을 높여왔다.

물론 고종수가 ‘재기에 성공했다’고 단언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12일 훈련을 마치고 숙소에서 만난 그 또한 “한창 때 두, 세수가 보였다면 요즘은 한 수가 겨우 보일 정도”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분명 달라져 있었다.

▲이제 겨우 한수 앞을 보는 정도
우선 그의 상태가 궁금했다. 수원전에서도 전후반 90분을 소화하고 수비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등 열심히는 뛰었으나 여전히 전성기의 고종수와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고종수는 체력보다는 섬세함과 경기를 읽는 시야를 이야기했다.

“몸은 많이 올라왔다. 실전에 나서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풀타임을 뛸 수 있는 체력도 있다. 하지만 섬세하고 세밀한 면이 아직 부족하다. 스루패스의 강약을 조절하거나 동료가 좋아하는 위치에서 볼을 잡을 수 있도록 정확하게 연결 해주는 그런 것이다.

또 몸이 좋았을 때는 볼이 오면 최소 두 세수 앞을 봤는데 지금은 한 수 정도 보이는 단계다. 그라운드에서 조그마한 틀 밖에 안 보인다. 몸이 좋았던 때를 목표로 삼고 있다. 그걸 뛰어 넘으면 더 좋겠지만.“

고종수가 그라운드에 돌아온 뒤 회복하는 속도는 굉장히 빠른 편이다. 지난 동계 훈련에서 무리하다 인대가 끊어져 전반기 내내 재활 훈련에 매달려야 했으나 어느새 팀 플레이의 주축 노릇을 해내고 있다.

“실전에서 뛰니까 더 빨리 올라오는 것 같다. 게임에 못 나가면 자신감이 떨어진다. 이전에는 정말 자신감이 많이 떨어 졌었다. 과연 할 수 있을까, 패스가 좋아질 수 있을까, 슈팅을 때릴 수 있을까 등등 회의적인 생각이 많았다. 하지만 꾸준히 경기에 나가면서 자신감을 찾을 수 있었다. 혼자 하는 게 아니고 감독님을 비롯 코칭스태프, 동료들과 다 잘 맞아 들어간 결과다. 또 팀이 이기면 팀 선수단 전체적으로도 사기가 올라간다. 올해는 이 정도 수준이지만 내년 동계훈련을 착실하게 하면 더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환경은 열악해도 대전에서 뛰는 게 재미있기도 하다. 돈을 많이 쓰는 강팀을 꺾으면 보는 사람은 물론, 축구를 하는 선수들도 재미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개인적으로 공격 포인트는 중요치 않다. 직접 어시스트를 하지 않더라도 삼각패스를 통해 골이 들어가면 찌릿찌릿하더라. 팀이 이기는데 집중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1년 이상이나 놀았는데...’라면서 비아냥거렸던 사람들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 고종수의 경기 모습 [사진제공=대전시티즌]


▲옛날은 잊었다
지난 8월 본격적인 지도자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잠시 귀국했던 서정원은 ‘고종수가 달라진 것 같다’고 했다. ‘중요한 순간 대표팀에 고종수가 없다는 것은 그는 물론 한국 축구의 불행’이라고 안타까워한 서정원은 “요즘 종수가 싸이에 쪽지를 보내는데 많이 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어떻게 달라졌을까. 고종수는 멋쩍은 웃음부터 지었다.
 
“정원이 형이 그런 말을 했나. 특별한 것은 없는데. ‘옛날이 그리울 때가 있다’고 쪽지를 보내면 ‘더 열심히 하라’고 하더라.

뭐 생각이 바뀌고 그런 것 같다. 요즘은 프로에 처음 왔을 때처럼 하려고 한다. 옛날은 잊은 지 오래다. 운동을 안 하고 있을 때 별의별 소리가 다 들렸다. 그게 싫었다. 고종수라는 이름이 먼 훗날 ‘멋있는 선수였다’로 남는 게 아니라 ‘자질은 좋았으나 몸 관리도 잘하지 않고, 꼴통같이 하다 결국 ...’이런 식으로 기억되는 것도 정말 싫었다. ‘한번 이를 악물고 해보자’고 했는데 처음에 탈이 났다. 인대가 파열되고 했을 정도였다.

그저 사람들에게 ‘축구 천재’ 고종수가 아니라 묵묵히 열심히 하는, 간간이 개인기도 보여주는 이런 선수로 기억되고 싶을 뿐이다. 예전의 화려함을 찾고 싶은 마음도 없다. 더 이상 떨어질래야 떨어질 데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하더라. 예전의 기량을 찾는 게 아니라 또 다른 내가 되어 계단을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뿌듯하기도 하다.“


▲프리킥을 차지 않는 고종수
요즘 고종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프리킥을 차지 않는다. 2001년 1월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한일 올스타-세계 올스타전에서 당시 세계적인 골키퍼 호세 루이스 칠라베르트(파라과이)를 꼼짝 못하게 한 왼발 프리킥골을 축구팬들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한때는 아크 왼쪽에 ‘고종수 존’이 있었다. 이곳에서 차는 프리킥의 적중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이후 ‘이천수 존’ 등이 나왔다.

“이번 시즌에는 안 찰거다. 오랫동안 운동을 하지 않아 수원에 있을 때처럼 코너킥 프리킥을 다 차면 근육이 받쳐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동료 브라질리아의 왼발 킥 능력이 좋다. 교체돼서 없으면 모르겠지만 브라질리아가 있으면 그가 차는 게 맞다. 브라질리아의 프리킥을 기대해도 좋다. 프리킥은 볼 밑을 찬다고 공이 떨어지지 않는다. 공 중간을 세게 차야 툭 떨어진다. 연습 경기때 데닐손과 함께 브라질리아에게 힘을 빼고 한번 차보라고 했다. 결과가 좋았다.(브라질리아는 12일 자체 연습 경기 중 소위 ‘고종수존’에서 그림 같은 프리킥을 성공시켰다)

최근 축구팬들 사이에 고종수, 이천수 이관우 등 프리킥의 달인들을 두고 누가 더 뛰어난지 갑론을박이 벌어진 적이 있다.

“누가 낫다 못하다 이야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비교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흥밋거리를 주려는 것 일 뿐이다. 요즘은 팀 마다 전문 프리키커들이 있는데 다 잘 찬다. 서로 차는 방법이 다 있다. 천수도 잘 차고, 박주영이도 좋다.(옆에 있던 김호 감독은 이 이야기가 나오자 프리킥의 파워면에선 고종수가 이천수보다 낫다고 평가했다)

▲돌아온 K리그, 동업자 의식을 가졌으면
시즌 막판 K리그에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심판 판정에 대한 항의가 빈발하는 등 그라운드에서 추태가 이어졌다. 고종수는 J리그에서 유턴한 직후 K리그의 거친 행태를 지적하면서 동업자 의식을 강조한 바 있다.

“선수들 사이에 나이가 좀 들면 일본의 J2 리그라도 가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K리그가 너무 거친 탓이다.

잘못된 습성들이 많다. 가령 2-0, 3-0으로 지고 있으면 생짜로 상대 선수를 깐다. 그걸 근성이라고 하는데 그건 아니다. 일본 같은 경우 5-0으로 지고 있어도 자기 플레이를 한다. 어떤 때는 너무 태연한 것 같아 의아스럽기도 했다. 크게 졌는데도 선수들은 헤드셋을 끼고 음악을 듣고 여자 친구한테 전화 하고 하더라. 화가 날 정도였다. 우리 같으면 선수들이 아무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을 것이다. 일본 선수들은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배운 것 같다.

과거에는‘지고 있으면 뒷다리라도 차고 나오라’고 배웠다. 어릴 때 교육이 중요하다. 나만해도 숙소생활을 하면서 하루 네 번씩 운동하는 등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학원축구를 하다보니 부작용이 있었다. 너무 갇혀 있다 풀어지는데서 오는 것이다. 이러면 안되는 줄 알면서 몸은 당구장에 가 있고, PC방에 가 있고 하는 식이다. 학원축구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심판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한 것 같다. 다만 심판분들께는 열심히 준비한 선수들을 생각해 달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선수들은 경기에만 집중해도 모자란데 판정에 신경 쓰다보면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이 이어지면 한국 축구도 퇴보한다.“

▲태극마크? 그저 묵묵히 열심히 할뿐
다시 태극마크를 달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고종수를 볼 수 있을까. 지난 1997년 1월 호주 4개국 대회 노르웨이전에서 국가대표 데뷔전을 가진 고종수는 같은 대회 뉴질랜드전에서 당시 최연소(18세 87일) A매치 득점 기록을 세우며 ‘앙팡 테리블’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1년 입은 오른쪽 무릎 인대 파열 부상이후 태극마크와는 멀어졌다. 2002년, 2006년 월드컵은 그저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지켜 봤을 뿐이었다.

“국가대표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는다. 팀에서 열심히 하다보면 가슴에 다시 태극 마크를 다는 날도 오겠지만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그저 훈련을 착실히 하고 부상을 당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다. 이제는 부상의 ‘부’자가 나오는 것도 싫다.

2006년 월드컵때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응원했을 뿐이다. 다만 월드컵을 보니 이제 어느 나라나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더라. 우리도 더 발전할 수 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연연하지 말고 멀리 내다봤으면 좋겠다.“

고종수가 그의 축구인생에서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기억은 무엇일까. 그는 피식 웃었다.

“거의 없는 것 같다. 힘든 일 밖에 기억이 안 나는데. 그래도 처음 국가대표가 됐을 때, 그리고 국가대표로 첫 골을 넣었을 때를 잊지 못한다. 칠라베르트를 상대로 프리킥 골을 넣은 것도 기억에 있다. 아무튼 2001년 무릎을 다치기 전까지는 좋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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