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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잘 나가는’ 작곡가는 극히 일부다. 무명 작곡가를 찾는 기획사는 드물기 때문이다. 유명 아이돌의 곡이 아니면 방송 전파 한 번 타기 힘든 게 현실이다. “그나마 기회를 잡아 성공해도 작곡가로서 지속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이들은 전체 작곡가 중 10% 남짓에 불과하다”는 게 가요 관계자들의 말이다.
실제로 H.O.T·핑클 등 1세대 아이돌 그룹의 히트곡을 다수 배출해 낸 작곡가들조차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핑클의 ‘영원한 사랑’과 ‘화이트’, 소찬휘의 ‘티어스(Tears)’ 등의 작곡가 주태영은 최근 이데일리 스타in에 10여 년째 암 투병 중인 사실을 처음 털어놨다.
주태영은 지난 2001년 병원서 혈액암 진단을 받았다. 수차례의 항암 치료를 받고 회복하는 듯했으나 작년 12월 암이 재발했다. 또 다시 세 차례에 걸쳐 항암 치료를 받은 그는 지난 6월 말께 골수이식 수술을 받았다.
작곡가 오지훈은 ‘룰라’ 신정환의 라이벌로 불리면서 혼성그룹 투투의 원년 멤버로 활동하며 ‘일과 이분의 일’·‘내 눈물까지도’·‘바람난 여자’ 등을 작곡했다. 그는 충남 천안 고향 집에서 요양 중이다. 2003년 갑작스레 체중 39kg이 줄며 건강에 이상 징후를 보인 탓이다. 병원 검사 결과 장 안에 바이러스가 발생해 신체가 허약해지는 희귀병이었다. 다행히 가족들의 극진한 간호를 통해 2007년 완치됐다는 진단을 받았으나 이번엔 연로한 어머니가 위중해졌고, 결국 그는 2010년 귀농을 택했다.
H.O.T의 ‘캔디’·‘행복’, UP의 ‘뿌요뿌요’ 등으로 유명한 작곡가 장용진은 2005년 제작자로 나섰다가 소속 신인 가수와 전속계약 분쟁에 휘말리며 사업을 접었다. 한 관계자는 “도무지 그와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며 “이쪽 바닥(가요계)을 완전히 떠난 것 같다”고 전했다.
노래를 만들 때 스트레스 때문에 지나친 흡연과 음주에 빠지는 것도 문제다. 한 작곡가는 “창작의 고통은 곧 술과 담배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또 음악만 하다 보니 세상 물정과 비즈니스도 모른다. 주위에서 사기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씁쓸해했다.
H.O.T를 키워낸 정해익 해피트라이브엔터테인먼트 대표는 “K팝 도약의 튼튼한 디딤돌은 바로 국내 작곡가들의 저력”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이어 “작곡가 사이에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반복될수록 젊은 창작인·제작자들의 의욕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들의 합당한 처우를 위해서라도 음원 불법 다운로드 근절 및 외국에 비해 열악한 수익 분배 비율이 개선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