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변호사·의사…"그래! 나 빠순이다"

  • 등록 2012-07-24 오전 8:33:00

    수정 2012-07-24 오전 11:37:13

JYJ 팬 박람회를 찾은 팬들과 공연 관람객들(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데일리 스타in 조우영 기자] “조금 부끄럽네요. 보통 사람들이 볼 때는 흥미롭겠지만, 솔직히 그들에게 우린 ‘이해할 수 없는 종족들’이잖아요.”

최근 새 앨범을 발표한 가수 임재범의 쇼케이스 현장서 만난 김진숙(40·가명)씨는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반색하면서도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룹 JYJ(재중·유천·준수)의 팬 박람회를 찾은 이혜정(36·가명)씨 역시 마찬가지다. 두 사람의 직업은 각각 변호사와 의사다.

‘팬덤(Fandom)’의 평균 연령대가 요즘 높아지고 있다. 10, 20대 초반이 아닌 30대 중반에서 40대 팬들이 수두룩하다. 변호사·의사·건축가 등 각 분야 전문직 종사자를 비롯해 고위 공무원, 대기업 임원 등도 적잖다. 이들 30, 40대 ‘팬덤’은 ‘이모팬’·‘누나팬’으로도 불린다. ‘빠순이’라는 표현도 이들과 어울려 ‘빠순이모’가 되면 긍정 혹은 유머의 의미를 갖게 된다.

이들은 막강한 경제력을 갖춰 만만치 않은 영향력을 발휘한다. 거액을 들여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대량 구매해 다른 주변인들에게 선물한다. 자발적으로 팬층을 넓히는 거다. 응원하는 배우가 출연 중인 드라마 촬영 현장에 100인분이 넘는 ‘밥차’를 쏜다. 좋아하는 ‘동생·오빠’의 이름으로 기부도 한다. 모두 1000만원이 넘는 카메라 장비를 들고 스타의 생생한 모습도 담아낸다. 내 애정이 담긴 ‘오빠’의 모습을 다른 팬들과 공유하기 위함이다.

그들은 “대부분 우릴 보고 극성스러운 팬으로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며 “여가생활을 즐길 뿐 연예인들을 귀찮게 하거나 피해를 주는 일명 ‘사생팬’과 우리는 다르다”고 입을 모았다.

일부 어린 팬은 순수한 열정이 지나치다 보니 초상권 허락 없이 ‘오빠’의 사진을 DVD 등으로 제작해 3~4만원씩 돈을 받고 파는 일이 있다. 자신들만의 표식을 사진에 버젓이 새겨 넣는 것을 보면 현행 저작권법상 불법인지조차 인식을 못 한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몇몇 팬은 아예 이를 생업으로 삼는 이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재범의 팬 김진숙 씨는 “진정한 팬이라면 좋아하는 연예인의 콘텐츠 보호를 확실히 해줘야 하는 게 ‘오빠’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다”고 꼬집었다. 김씨는 “아직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어린 친구들의 생각이 짧은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30, 40대 ‘팬덤’은 1990~2000년대 서태지·H.O.T·동방신기·신화 등을 거친 세대다. 당시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발달하지 않은 시절이어서 팬덤이 조직화 되진 못했다. 기획사가 음성 사서함을 만들어 놓고, 팬들이 전화를 걸면 ARS 안내로 가수의 스케줄을 알려주는 식이 고작이었다.

어느덧 가정을 이룬 이들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느 팬덤과 달리 조용히 홀로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JYJ 팬 이혜정 씨는 “동방신기 시절부터 JYJ의 팬이지만 한 번도 그들의 집 앞에서 기다린 적은 없다”며 웃었다. 올해 결혼 11년 차이기도 한 이씨는 지난해 JYJ 월드투어 나라 중 한 곳인 태국까지 아이들과 함께 다녀왔다. 이씨는 “남편이 흔쾌히 동의했다. 내가 좋아하는 JYJ를 보면서 아이들, 시댁,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푼다”고 말했다.

이씨의 사촌 언니 박정림(45·가명) 씨는 결혼 후 살림만 하며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배우로 나선 에릭을 우연히 TV서 보고 반해 그룹 신화의 팬이 됐다. 박씨는 “‘사생팬’의 만행이 이슈가 된 뒤 순수한 팬 문화 전체가 그런 것처럼 몰아져 ‘정신 못 차리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현실이 속상하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어 “우리끼리도 ‘빠순이’라는 말을 쓰긴 하지만 세상의 편견이 무섭다”고 덧붙였다.

이들을 재조명할 기회가 생겼다. 24일 오후 첫 방송되는 케이블 채널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은 1990년대 부산을 배경으로 H.O.T 광팬 6인방의 이야기를 다룬다. 연출을 맡은 신원호 PD는 ‘빠순이’에 대해 “대중문화를 떠받들고 있는 주체”라고 주장했다. 신 PD는 “열렬한 ‘팬덤’이 ‘빠순이’로 폄훼돼 전반적으로 한심하다는 시선 때문에 이들이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진숙·이혜정·박정림 씨는 힘주어 말했다. “그래, 우리 ‘빠순이’다”라고. “긍정적인 면을 봐 달라”는 얘기다. 이들의 이러한 당당한 외침이 K팝으로 대표되는 최근 한류 열풍의 힘이다.

※ ‘빠순이’란? = ‘오빠’와 ‘순이’의 합성어로 모든 일을 제쳐놓고 가수·배우 등 유명인을 쫓아다니면서 응원하는 여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국립국어원이 발행한 ‘2002년 신어’ 보고서에도 실렸다. 일각에서는 그들의 다소 광적인 행동에 대한 경멸적 어감이 포함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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