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지켜본 세계최고 경마대회 '켄터키 더비'

진흙탕 스트레스 속 우승… 출전마중 홀로 두번 경험

정보 가진 경마꾼들도 트랙 상태 몰라 못 걸어
  • 등록 2010-05-03 오전 7:57:45

    수정 2010-05-03 오전 7:57:45

[조선일보 제공]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출발대의 철문이 열렸다. 20마리의 경주마가 튀듯이 트랙으로 뛰쳐나갔다. 새벽부터 내린 비에 경마장의 트랙은 질퍽한 진흙탕으로 변해 있었다. 질주 본능에 몸을 떠는 경주마들은 서로 뒤엉켜 트랙을 돌았고, 말발굽에 파헤쳐진 진흙이 공중으로 뿌려졌다. 15만5800여명의 관중은 더욱 흥분해 함성을 내지르며 자신이 돈을 건 말의 이름을 목청껏 외쳐댔다.

2일(한국 시각) 미국 루이빌 처칠다운스에서 열린 136년 전통의 세계적 경마대회 '켄터키 더비(Kentucky Derby)'. 매년 5월 첫째 주 토요일에 열리는 이 대회는 국내외 VIP들과 지역 주민들이 한데 어울리는 축제의 장이다. 올해 우승 상금 142만5200달러(약 15억8000만원)의 주인공은 1.25마일(약 2011m)의 주로에서 단 2분20초 만에 가려졌다. 이날 우승마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수퍼세이버(Super Saver)'였다.

■비와 진흙이 연출한 이변

켄터키 더비엔 미국 일급 경마대회를 일컫는 '그레이드(grade) 경주'에서 최근 1년간 종합 상금 순위 20위에 든 세 살짜리 말들만 출전할 수 있다. 수퍼세이버의 상금 순위는 12위(36만3832달러)에 불과했고, 배당률은 9대1이었다. 이 말이 우승했을 때 건 액수의 9배를 준다는 것은 우승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뜻이다. 우승 1순위로 꼽혔던 말인 '룩킨앳러키(Lookin at Lucky·상금 1위·148만달러)'의 배당률은 3대1이었다.

이처럼 대회 직전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수퍼세이버의 예상을 깬 우승을 현지 전문가들은 "진흙이 빚어낸 이변"으로 표현했다. 맑은 날씨의 푸석푸석한 모래 주로보다 진흙 트랙에서 강한 근성을 보이는 것이 바로 수퍼세이버라는 뜻이었다. 수퍼세이버는 출주한 20마리 중 유일하게 진흙 트랙 위에서 우승한 경험(2009년11월·뉴욕 벨몬트대회)이 있었다.

■진흙의 스트레스를 이겨라

우승한 경험이 중요한 이유는 말의 예민한 성질 때문이다. 경주마는 어떤 환경이든 처음 접하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아 자신의 실력을 100% 발휘하지 못한다. 진흙 트랙에 경험이 없는 말은 온몸에 튀기는 진흙에 스트레스를 받게 돼 경주에 큰 영향을 받는다.

진흙 트랙에선 편자도 바뀐다. 경주마는 축구화에 스파이크가 달린 것처럼 올록볼록하게 바닥이 튀어나온 편자를 발굽에 붙인다. 미끄러지지 않고 확실히 땅을 박차기 위해서다. 이 편자에 얼마나 익숙한가도 경주 능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흔히 경마를 마칠기삼(馬七騎三·말의 능력이 7이면 기수 능력이 3)이라고 하지만 비가 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기수들은 진흙 트랙에 나서는 날이면 5~6개의 얇은 고글을 겹쳐 쓴다. 젖은 흙이 고글에 붙을 때마다 하나씩 벗어 던지면서 앞으로 달려나가는 순발력이 필요한 것이다. 보통 기수들은 젖은 트랙에선 조금 멀더라도 바깥쪽으로 코너를 도는 전략을 주로 사용한다. 말들이 몰리는 안쪽은 진흙이 많이 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흙에 익숙한 기수는 달랐다. 오히려 과감하게 안쪽을 파고들어 경기를 지배했다. 수퍼세이버의 안장에 올랐던 캘빈 보렐(Borel)은 지난해 켄터키 더비에서도 비를 뚫고 우승하며 이변을 일으킨 '마인댓버드(mind that bird)'의 기수였다.

■엇갈린 1240억원의 희비(喜悲)

이날 더비 한 경주에 걸린 배팅액은 총 1억1270만달러(약 1240억원). 수퍼세이버는 자신에게 승부를 건 사람들에게 대박의 꿈을 이뤄줬다. 한 관중은 경기 후 "10만달러를 걸어 90만달러를 땄다"며 TV 중계 카메라 앞에서 춤을 추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관중은 돈도 잃고 온종일 내린 비 탓에 유명 연예인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레드 카펫' 이벤트도 취소돼 불쾌한 표정이었다.

말과 기수에 대한 모든 정보가 제공되는 캔터키 더비에서 왜 많은 사람이 진흙밭에서 우승 경험이 있는 수퍼세이버에게 돈을 걸지 않았을까. 내리던 비가 더비 직전에 개면서 트랙이 얼마나 질퍽할지 예상에 실패한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트랙은 비가 일정 수준을 넘기 전까지는 물을 먹고 오히려 더 딱딱해지다가 한계를 넘으면 진흙으로 변하는데 많은 관중이 이 변수를 놓친 것이다. 한국마사회(KRA) 탁성현 차장은 "정보를 알고도 정작 돈을 걸 땐 대세를 따르는 게 경마판의 심리"라고 했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홀인원' 했어요~
  • 우아한 배우들
  • 박살난 車
  • 화사, 팬 서비스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