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돈 번 얘기는 하지도 말아"..양극화 그늘

공감 대사로 돌아본 2012 한국영화 ②
  • 등록 2012-12-18 오전 8:00:00

    수정 2012-12-18 오전 8:02:32

올해 4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은 한국영화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도둑들’ ‘광해, 왕이 된 남자’ ‘늑대소년’ ‘내 아내의 모든 것’ ‘댄싱퀸’ ‘건축학개론’ ‘연가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이데일리 스타in 최은영 기자]부족함이 없었다. 어느 때보다 풍성했다. ‘연 관객 1억 명 돌파’. 이 기록이 한국영화의 부흥기를 바로 말해준다. 다양한 장르, 소재의 영화가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양극화의 그늘은 풀어야할 숙제로 남았다. 올 한해 스크린을 통해 관객을 울리고 웃긴 배우들의 ‘말.말.말’로 2012년 영화계를 더듬어 봤다.

‘건축학개론’에서 납뜩이 역할로 주목받은 배우 조정석(사진 왼쪽)과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 하정우 오른팔로 출연해 올해 각종 신인상을 휩쓴 김성균.


“어떡하지, 너?”···주연 이상의 무게감, 2인자의 반란

‘건축학개론’은 “어떡하지, 너?”라는 유행어를 남겼다. 이 대사의 주인은 주인공 승민 역의 이제훈이 아닌 그의 친구 ‘납뜩이’ 조정석이다. 올해는 특히 신선한 얼굴과 뛰어난 연기력으로 주연보다 더 큰 사랑과 관심을 받은 조연 배우들이 많았다.

김성균도 그 중 한 명이다. 조연으로 출연한 스크린 데뷔작 ‘범죄와의 전쟁’으로 대박을 터뜨리며 단박에 주연 자리를 꿰찼다. 김성균은 연말 시상식에서 ‘범죄와의 전쟁’과 ‘이웃사람’으로 번갈아가며 신인남우상을 수상해 4관왕에 올랐다.

류승룡과 김인권도 올해 당당히 1인자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류승룡은 지난해 ‘최종병기 활’로 깊은 인상을 남긴데 이어 올해 ‘내 아내의 모든 것’과 ‘광해’로 3연속 히트 행진을 이어가며 흥행 배우로 발돋움했다. 김인권은 ‘해운대’에 이어 ‘광해’가 1000만 관객을 동원하며 ‘2000만 배우’가 됐다. 이 밖에 조진웅, 마동석, 곽도원, 오달수 등이 다양한 작품에서 ‘신 스틸러’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부러진 화살’ ‘남영동1985’ ‘26년’.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공정사회·민주화 열망

지난해 ‘도가니’의 열기가 올해도 계속됐다. 권위적인 한국의 사법부와 검찰을 비판한 ‘부러진 화살’을 시작으로 부당한 권력에 영화로 맞서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었다. ‘부러진 화살’에서 재판을 받던 ‘석궁교수’ 김경호(안성기 분)는 어처구니없는 법의 심판에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라고 비꼰다. 이 영화는 지난 1월 개봉해 전국 340만 관객을 동원했다.

연말 대선과 맞물려선 민주화 열기가 뜨거웠다. 5공 시절 고문실화를 그린 ‘남영동1985’, 5.18 광주민주항쟁을 소재로 한 ‘26년’ 등의 영화가 유사시기 쏟아졌다.

김인권 주연의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에 경찰 역으로 특별출연한 고창석은 철가방 황비홍 역의 박철민에게 ‘독재’와 ‘민주주의’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독재는 ‘홀로 독, 꼴릴 재’ 자를 쓴다. 혼자 꼴리는 대로 하면 독재고, 모두가 꼴리는 대로 하면 민주주의다.” 하반기 극장가를 관통한 주제다.

한국영화 양극화의 상징이 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와 ‘터치’. ‘터치’의 민병훈 감독은 자신의 영화가 거대 배급사의 작품에 밀려 교차상영되자 스스로 종영을 선택했다.
“남 돈 번 얘기는 하지도 말아”···대기업 독과점에 작은 영화 ‘눈물’

영화 ‘도둑들’에 줄타기 전문 도둑 예니콜로 출연한 전지현은 “마카오에서 3일 만에 88억원을 딴 전설의 도둑”이라고 장물아비가 새로운 팀의 리더 마카오박(김윤석 분)을 소개하자 이렇게 말한다. “남 돈 벌었다는 얘기 하지도 말아. 나 아니면 다 쓸데없어”.

올해 한국영화의 줄 흥행을 지켜보며 누군가는 이 대사를 씁쓸하게 곱씹어야 했다. 한국영화가 부흥기를 맞았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현장 실무 스태프의 처우는 열악하다. 대기업에 의한 스크린 독과점과 수직계열화 문제 역시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피에타’의 김기덕 감독은 “백성의 억울함을 말하는 영화가 멀티플렉스 극장 독점을 통해서 영화인들을 억울하게 해서야 되겠느냐”며 CJ엔터테인먼트가 기획·투자·배급한 영화 ‘광해’를 비판했다.

얼마 전 청룡영화상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최민식은 “최근 어떤 동료 감독이 자기 자신의 자식과도 같은 작품을 스스로 죽이는 모습을 봤다”라며 “화려한 잔치지만 우리의 동료 누군가는 쓴 소주를 마시며 비통에 젖어 있을 것이다. 상업영화든, 비상업영화든 그런 동료가 없어야 하겠다. 머리를 맞대고 상생 방안을 고민해보자”고 제안해 현장에 모인 많은 영화인들의 공감을 샀다.

<1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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