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픈 역사상 최악의 참사가 발생했던 카누스티[골프의 성지 탐방기④]

1560년 개장 또 다른 골프의 기원..대중화에 앞장
1999년 18번홀에서 디오픈 역사사 최악의 참사
3타 차 선두 방 드 벨드, 트리플보기로 연장 허용
디오픈 8차례 개최, 가장 까다로운 코스로 악명
  • 등록 2022-07-19 오전 12:04:00

    수정 2022-07-19 오전 12:04:00

노을이 지고 있는 커누스티 골프링스크의 18번홀 그린의 전경 . (사진=주영로 기자)
[카누스티(스코틀랜드)=이데일리 스타in 주영로 기자] 150주년 디오픈 취재를 위해 14시간의 비행 후 기차를 타고 4시간을 이동한 뒤 자동차로 1시간을 달려 스코틀랜드 제4의 도시 던디(Dundee)에서 조금 더 떨어진 카누스티 골프 링크스(Carnoustie Golf Links)에 도착했다.

1560년 지어진 것으로 기록된 카누스티 골프링크스는 디오픈이 열리는 스코틀랜드 링크스 코스 중 하나다. 1999년 장 방 드 벨드(프랑스)가 마지막 홀에서 트리플 보기를 하며 우승을 놓쳤던 장소로 더 유명하다.

영국인 로버트 모일은 카누스티에서 처음 골프를 친 골퍼로 기록돼 있다. 초창기엔 10개 홀로 운영되다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의 코스관리자이자 골퍼였던 올드 톰 모리스가 1867년 18홀로 확장했다. 1926년엔 제임스 브레이드가 코스를 리뉴얼하면서 지금의 챔피언십 코스가 됐다.

카누스티라는 이름은 바위를 뜻하는 ‘Car’와 만(bay)을 뜻하는 ‘Noust’의 합성어다. 또 다른 속설에선 노르웨이 신들이 자신을 지키는 전사를 잃는 것에 분노해 이웃에 저주를 퍼붓기 위해 수천 마리의 까마귀를 풀었다. 까마귀는 바다건너 스코틀랜드에 모여들었고 사람들은 이 동네를 ‘Craws Nestie’로 불렀고 나중에 카누스티가 됐다고 한다.

카누스티 골프링크스는 약 40분 거리에 있는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가 ‘골프의 발상지’로 알려졌다면, 카누스티는 골프를 대중화한 곳이라고 주장한다.

20세기 초 카누스티에선 약 300명의 골퍼를 미국과 호주 등으로 파견했고, 그들에 의해 골프가 전 세계로 전파됐다는 설명이다.

카누스티 골프링크스를 알리는 상징물. (사진=주영로 기자)
카누스티 골프 링크스는 디오픈이 열리는 10개 골프장 가운데서도 가장 까다롭다는 평가를 듣는다. 가장 최근엔 2018년 개최했고 디오픈은 모두 8번 열렸다. 코스의 전장도 길어 2018년 대회 때는 파71에 7402야드였다.

1931년 디오픈을 처음 개최했고 토미 아머가 우승했다. 이어 헨리 코튼(1937년), 벤 호건(1953년), 게리 플레이어(1968년), 톰 왓슨(1975년), 폴 로리(1999년), 파드리그 해링턴(2007년), 프란체스코 몰리나리(2018년)이 한 번씩 우승했다.

카누스티는 까다로운 코스에 변화무쌍한 날씨까지 심술 궂어 미국에서 건너온 선수들은 이 코스는 ‘커-내스티’(Nasty·끔찍한, 심각한)라고 부르기도 한다.

23년 전 카누스티에선 디오픈 역사에 길이 남은 참사가 일어났다. 3타 차 선두로 디오픈 우승을 눈앞에 둔 장 방 드 벨드(Jean Van de Velde·프랑스)는 18번홀에서 티샷을 날렸다. 499야드의 파4 홀로 카누스티에서 가장 까다로운 홀이지만, 누구도 방 드 벨드의 우승을 의심하지 않았다.

티샷한 공은 17번홀 쪽으로 날아가 러프에 떨어졌다. 무리하지 않고 3온을 시도해 보기나 더블보기만 해도 우승할 수 있었기에 이때까지도 대참사가 일어날 것이라는 상상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방 드 벨드는 뜻밖에도 2온을 시도했고 두 번째 친 공은 심하게 밀리면서 그린 주변 갤러리 스탠드 아래 깊은 러프에 떨어졌다.

최악의 상황은 그다음부터 이어졌다. 세 번째 샷으로 그린 앞 실개천을 넘기려다 그만 공을 물에 빠뜨렸다. 1벌타를 받고 다섯 번째 친 공은 벙커로 들어갔고, 결국 6타 만에 공을 그린에 올린 방 드 벨드는 트리플보기를 적어내고 말았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폴 로리는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하고 2위로 경기를 끝낸 뒤 짐을 싸 집으로 돌아가던 중 소식을 듣고 차를 돌려 다시 골프장으로 왔다. 그리고 방 드 벨드, 저스틴 레너드(미국)와 연장을 치러 극적으로 디오픈 우승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15~18번홀에서 치러진 4개홀 연장전에서 로리는 17번과 18번홀에서 버디를 잡아 방 드 벨드와 레너드를 꺾었다. 3타 차 선두를 지키지 못한 방 드 벨드에겐 결코 잊을 수 없는 악몽이, 폴 로리에겐 메이저 우승이라는 기적이 찾아왔다.

8년 뒤인 2007년에도 18번홀에선 이변이 일어났다. 박빙의 선두를 달리던 파드리그 해링턴(아일랜드)는 18번홀에서 티샷이 워터해저드로 빠졌다. 1벌타를 받고 친 세 번째 샷도 그린 앞 개울에 들어갔다. 해링턴은 고개를 떨궜고, 관중석에선 탄식이 나왔다. 결국 해링턴은 이 홀에서 더블보기를 했다. 8년 전 장 방 드 벨드처럼 또 한명의 희생자로 기억될 가능성이 컸다.

해링턴이 더블보기를 하면서 세르히로 가르시아(스페인)이 1타 차 선두가 됐다. 18번홀에서 파를 하면 첫 메이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가르시아도 악몽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약 2m 거리의 파 퍼트가 홀 왼쪽을 스치며 들어가지 않았다. 다시 기회를 잡은 해링턴은 연장에서 가르시아를 꺾고 우승했다.

23년 전 대참사의 기억을 떠올리며 찾은 카누스티의 18번홀은 평온했다. 오후 8시를 넘겨 찾은 카누스티 골프링크스엔 서서히 노을이 지고 있었다. 18번홀 그린에선 골퍼들이 퍼트하는 모습도 보였다.

골프장 직원은 23년 전 장 방 드 벨드의 참사가 일어난 18번홀 그린으로 안내했다. 오래된 일이어서 그런지 18번홀의 그린은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 평온했다. 지금은 노을이 지는 조용한 코스였다.

1999년 디오픈에서 장 방드 벨드의 악몽이 시작된 18번홀 그린 앞을 가로지르는 실개천. (사진=주영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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