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장인 리더십] 에필로그, 못 다한 이야기

  • 등록 2007-11-27 오전 7:59:30

    수정 2007-11-27 오전 7:59:35

▲ 김성근 감독 팬클럽 회원들이 SK 감독 취임식때 선물한 캐리커쳐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황대연 천안북일고 코치는 2002년엔 LG 매니저를 하고 있었다. 시즌 초 그는 적어도 이틀에 한번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십중팔구 전날 술을 많이 먹었거나 일 처리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원인 제공자는 늘 김성근 당시 LG 감독이었다. 김 감독은 모시기 쉬운 상관은 절대 아니다. 모든 일을 철두철미하게 챙기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특훈에 쉬는 날도 없고 스케줄은 바뀌기 일쑤다.

훈련 장소 한번 옮기려면 장소 협의에 식사 문제까지 통째로 바꿔야 한다. 선수들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스케줄을 전해주는 것 역시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가끔씩이면 참을 만 했겠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반복되니 속이 타들어갈 밖에. 황 매니저는 드러내놓고 불만을 얘기하진 않았지만 고충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2002년 당시 LG는 전반기까지 잘 나갔다. 2위까지는 어렵지 않게 차지할 듯 보였다. 그러나 주전 1루수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서용빈의 갑작스런 군 입대와 4번을 치던 김재현의 부상이 겹치며 후반기들어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된다.

결국 쉽게 제친 듯 보였던 두산의 추격을 받아 4위자리까지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다. 당시 두산은 후반기 초반 급격한 하락세를 보인 탓에 주춤했지만 우즈 김동주 안경현 홍성흔 정수근 등이 쟁쟁하게 버티고 있어 시즌 막판 다시 힘을 냈다. 두산의 뒷심은 LG의 1년 농사를 망쳐놓을 수 있을 만큼 거셌다.

그러던 어느날. 황 매니저와 단 둘이 얘기를 하게 될 기회가 있었다. “이러다 LG가 4강에 가지 못하면 어떻게 해요. 다들 고생 많이 했는데.” 황 매니저의 답은 귀를 의심케 했다. “감독님이 해답을 갖고 계실 거에요.”

솔직히 황 매니저가 그때까지도 김 감독에게 계속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 속엔 어느새 김 감독에 대한 믿음이 싹터 있었다. 그해가 지나도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여전히 인연의 끈이 단단하게 이어져 있다.

프롤로그 때 밝혔 듯 김재현도 한국시리즈가 시작되기 전 비슷한 말을 했다. 올 한해 누구보다 맘 고생이 심했던 그이지만 감독에 대한 믿음까지 흔들리진 않았던 것이다.

김 감독은 그런 사람이다. 결코 쉽게 물러설 것 같지 않은 무언가를 지니고 있다.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에겐 기대를, 적으로 만난 이들에겐 두려움을 안겨준다.

처음엔 김 감독을 받아들이지 않던 사람들도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을 열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 감독이 사람의 마음을 여는 열쇠, 그의 리더십의 처음과 끝은 ‘사랑과 정열’이다. 예전 모 드링크 광고처럼 ‘사랑과 정열’을 제자들에게 모두 쏟아 붓는다.

김 감독은 얼마 전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잘한 게 있다면 그건 선수들을 남의 자식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거야. 다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여기까지 왔어. 그러니 하나라도 소홀히 할 수 있나. 아무리 아파도 걔들 훈련할 땐 빠진 적이 없어. 그러다보면 마음이 통하는 것 같아. 내 마음을 알아준 선수들한테 고맙지.”

*덧붙이기
개인적으로 키무라 코이치씨가 네이버에 연재하는 칼럼을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코나미컵 아시아시리즈서 SK가 주니치에 패한 뒤 칼럼에서 “김성근 감독은 과연 경기 후에 편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었을까요? “SK의 건투”에 기뻐하며 행복한 단꿈을 꾸었을까요? 필자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필자는 김성근 감독이 분한 마음에 술을 퍼마신 후, 그래도 잠자리에 들 수 없어 밤을 지새우고 새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은 아닐까 라는 상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반드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쓰셨더군요.

키무라씨가 제 글을 보게 될 진 모르겠지만 그날 얘길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코나미컵 결승전이 끝난 다음날 아침 9시쯤, 김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한국에 들어간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죠.

김 감독은 실로 오랜만에 잔뜩 잠긴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시더군요. 김 감독의 잠긴 목소리를 듣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술을 먹은 다음 날이면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 몸을 추스르기 때문이죠. 선수들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것을 그만큼 싫어합니다.

전날 음주량이 어느정도였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김 감독의 마지막 인사는 “(KS 2차전처럼)또 연장 생각하다 졌구만. 아쉬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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