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장인 리더십] 8회초, 사자의 새끼를 키우는 법

  • 등록 2007-11-21 오전 8:18:37

    수정 2007-11-21 오전 8:18:44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지난해 이맘때 쯤 일이다. SK 슈퍼루키 김광현(19)이 낭고 마무리캠프에서 첫 불펜 피칭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김성근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감독은 기분 좋게 이미 맥주 한잔을 하고 있었다.

김 감독은 “내가 맡아 본 신인 투수 중 최고다. 류현진(한화) 만큼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극찬했다. 이례적으로 “내가 말한 것을 써도 좋다”고까지 덧붙였다.

문득 옛 기억이 떠올랐다. LG 감독이던 2002 시즌을 앞둔 오키나와 캠프때 김 감독은 한 선수를 두고도 비슷한 얘길 했었다. “걔가 배팅을 치면 그물망 주위로 양준혁 김재현도 모여든다. 확실히 치는 재주가 남달라. 잘 키우면 재밌어질 것 같아.” 주인공은 박용택(28)이었다.

다만 처방이 조금 달랐다. 김 감독은 그때 담당 기자들에게 “일단 내 얘기는 쓰지 말고 기다려달라”고 부탁했었다. 얼마 뒤 이유를 알게 됐다.

박용택이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될 처지가 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김 감독이 노발 대발하며 크게 나무랐다는 것이었다. 훈련태도가 태만해졌다는 것이 이유였다. 박용택은 이후 며칠동안 훈련장 주변만 맴돌아야 했다. 다시 이를 악문 뒤에야 다시 방망이를 잡고 맘껏 땀을 흘릴 수 있었다.

그해 박용택은 타율 2할8푼8리 9홈런 55타점 20도루를 기록하며 신인답지 않은 매서운 활약을 펼쳤다. 당시 LG 주전 좌익수는 그의 차지였다.

주위에선 이를 놓고 수군거리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김 감독의 야구 보는 눈이 틀렸다는 것”이었다. “누가 봐도 좋은 재목인데 선수도 아니라며 쫓아내려했었다. 그런 선수가 저리 성장했으니 할 말이 없는 것 아니겠냐”며 비아냥 거렸다.

그러나 그건 김 감독의 노림수를 모르고 한 말이었다. 김 감독은 박용택을 크게 꾸짖은 날 이렇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내가 가만 지켜보니 자극이 필요한 스타일이더라. 그냥 잘 한다고 나두면 자칫 잘못된 방향으로 나갈 수 있겠더라고. 이제 다시 지켜보는 일만 남았어.”

김광현은 반대였다. 처음부터 손을 대지 않았다. 투구 폼에 문제가 보였지만 굳이 고치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던지는 이유를 묻고는 김광현이 “예전부터 이렇게 던져 지금이 편하다”고 답하자 그냥 내버려뒀다.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시즌이 시작되고도 꽤 시간이 흐른 뒤였다. 부족한 것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는 본격적인 지도에 나섰다.

그리고 8월19일. 김광현은 이날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궤도에 진입하게 된다. 김광현은 이날 광주 KIA전서 초반에 무너진 김원형을 대신해 1회부터 마운드에 올랐다. 이미 경기가 기운 상태였기에 5회정도면 충분히 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김 감독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광현에게 “이미 이렇게 된거 끝까지 던져보라”고 주문했다. 결국 김광현은 7회까지 139개의 공을 던진 뒤 마운드를 내려왔다.

한국시리즈의 영웅으로 거듭 난 김광현은 시리즈가 끝난 뒤 스포츠 2.0과 인터뷰서 “처음엔 이유를 몰랐는데 던지면서 알게 됐다. 힘을 빼고 공을 던지는 것이 어떤건지 느끼게 된 경기였다”며 “끝까지 믿어주신 감독님 덕분이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이젠 그 뜻을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언뜻보면 박용택과는 다른 방식의 접근이다. 그러나 속내는 같았다. 스스로 어려움을 겪어보며 뭔가를 느껴보라는 것이었다.

김 감독은 모든 선수에게 일부러 어려움을 안겨주지 않는다. 밑에서부터 한단계씩 올라오는 선수들에겐 좀처럼 훈련시간을 빼가면서까지 혼을 내지 않는다.

잘못이 눈에 띄면 반대로 훈련을 더 시키는 방법으로 꾸지람을 대신한다. 당장 눈에 띄는 부족함이 있는 선수는 일단 그 부분을 보충하는데 온 힘을 쏟는데만 온 신경을 집중한다.

김광현처럼 경기 중에 느끼도록 기회를 주는 경우도 드물다. 올시즌 김광현과 같은 방식을 쓴 선수는 채병룡(5월29일 잠실 두산전-140구)이 유일했다.

시련은 한단계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때론 인생이란 그릇을 찌그러트리기도 한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박용택과 김광현은 김 감독의 눈을 단박에 사로잡은 최고의 재목들이었다. 그들의 내성을 더욱 강하게 만들기 위해 다른 선수들과는 또 다른 접근을 했던 것이다.

박용택은 2002년 KIA와 플레이오프서 홈런 2개를 치며 MVP를 차지했다. 공식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 인터뷰 룸 앞에서 우연히 만나게 됐을 때 그동안 묻고 싶었지만 참아왔던 것을 물었다. “스프링캠프서 감독이 집에 가라고 호통쳤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그는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솔직히 제가 위에서 좀 눌러줘야 잘하는 스타일이거든요. 많이 힘들었지만 그 다음부터 계속 긴장하면서 지낸 것이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감독님께 감사하죠.”

사자는 새끼를 낳으면 우선 언덕 밑으로 굴러 떨어트린다고 한다. 그 언덕을 스스로의 힘으로 기어오르는 새끼를 키우기 위해서다. 강하게 클 수 있는 자식일수록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정글의 논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김성근 감독이 박용택과 김광현을 키워내는 모습을 보면 사람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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