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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김 위원장의 근처에 30~40대 젊은 책사 그룹 10여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김 위원장과 엇비슷하게 어린 나이에 유학 생활을 하면서 외부 세계의 발전을 직접 체득했다. 북한이 2018년 들어 그 이전과 결이 다른 정책을 추구하는 데에는 이들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최룡해(노동당 부위원장)나 김영남(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과거 인물들에게서 이런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다”고 귀뜸했다.
직책도 실체도 드러나지 않는 은둔의 조언자들
이들은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극비의 실세로 알려져 있다. 실제 당내에서 이렇다할 직위나 직책을 맡지 않은 채 김 위원장의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역할만을 수행하고 있다. 북한 체제에서 2인자로 표현되는 최룡해 부위원장이나 김영남 상임위원장 등은 상징적인 의미의 권력은 있지만 실제 권력을 누리는 인물들은 아니라는 평가다. 실제 김영남 위원장은 평창 동계 올림픽 때 방한하면서 남북 교류의 첫 물꼬를 트는 역할을 맡았으나 그 이후 존재감이 미미하다.
김정은 위원장이 2018년 들어 광폭 행보를 보이는 것도 이 같은 전략적 판단에서다. 지난 2011년 권좌를 잡은 김 위원장은 무려 7년이라는 세월 동안 북한 밖을 나서지 않고 내부 결속을 다지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그를 ‘은둔의 지도자’라고 칭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상국가’로의 발돋움을 꾀하는 2018년에는 무려 5차례나 평양을 비우면서 파격적으로 외교가에 데뷔했다. 지난 3월 중국을 극비리에 방문한 뒤에는 김씨 가문, 이른바 ‘백두혈통’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남한 땅을 밟기도 했다. 3개월이란 짧은 시간 동안 중국을 세차례나 오간 것이나 미국 대통령을 만난 것 모두 파격의 연속이었다.
경제 활성화 부문 역시 적극적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월21일 중국을 세번째로 방문했던 김 위원장은 이후 7월 한 달에만 5차례 경제 시찰에 나서면서 경제 개발에 매진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신의주 등 북중 접경지대, 양강도 삼지연군 일대 생산현장, 함경북도 경제현장, 강원도 양묘장, 강원도 군부대용 기초식량 생산공장 등 북한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경제 발전 의지를 한껏 드러냈다.
군부의 몰락 외교가의 부상
김 위원장은 군부 출신의 인물들을 좌천시켜 경제 시찰 현장에 대동하는 모습도 연출했다. 7월 경제 시찰 일정에서 북한군 제복 군인 서열 1순위인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을 역임했던 황병서나 당 중앙위원회 군사부장을 지낸 오일정 등을 배석시켜 군부를 쥐락펴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북미 정상회담 등 외교계 이벤트를 맞아 고위급 외교관들은 힘을 얻었다. 서방 세계 외교전문가인 리수용은 7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위원으로 승격했다. 앞서 리용호 외무상도 2017년 10월 2차 전원회의에서 정치국 위원으로 승진했다. 북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실무 협상을 맡았던 최선희 역시 협상에 앞서 외무성 북아메리카국 국장에서 외무성 부장으로 격을 높였고 외무성 북아메리카 부국장을 지냈던 최강일이 국장으로 승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