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직된 재벌 규제 사라진다…금산분리 규제도 완화되나

문재인 정부, 재벌 규제 강화 없어
유통3법 개정 통한 개혁과 차이나
딱딱한 법률 개정 아닌 자발적 변화
경직된 금산분리, 삼성그룹만 문제
제도 강화보다는 변화 유도해 해결
  • 등록 2018-05-14 오후 5:31:32

    수정 2018-05-14 오후 5:45:34

[세종=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는 대표적인 경직된 재벌 규제로 꼽힌다. 자산총액이 10조원 이상의 기업집단에 속하는 계열사가 당해회사 순자산액의 40%를 초과해 다른 국내회사의 주식을 취득 또는 소유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사전적 규제다. 이른바 재벌의 ‘문어발식 사업확장’을 막기 위한 장치다.

이 제도는 1987년 2월에 도입되어 12년간 운영돼 오다가 1998년 2월 외국인의 적대적 M&A 허용에 따라 국내기업에 대한 역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폐지된 이후 김대중 정권 말인 2001년 4월부터 부활됐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대기업의 투자를 막는다는 이유로 다시 폐지됐다. ‘친 재벌 정책’ 논란도 있었지만, 대기업마다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인 규제는 반(反)시장적이라는 합리적인 이유도 작용했다.

김상조(가운데) 공정거래위원장과 정진행(왼쪽) 현대자동차 사장, 윤부근(오른쪽) 삼성전자 부회장 등 10대 그룹 경영진들이 지난 10일 오전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의에서 열린 공정거래위원장과 10대 그룹간 정책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이데일리 DB


문재인 정부 들어 재벌 규제 강화된 것 없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출총제와 같은 경직된 재벌 정책이 조금씩 완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총대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맸다. 그는 “딱딱한 법률 개정을 통해서 재벌 변화를 압박하고 강제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라며 “시간을 가지고 각 그룹에서 자발적으로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변화의 길”이라고 일관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실제 공정위는 재벌 정책과 관련해 별다른 입법을 하고 있지 않다. 가맹·유통·대리점 등 이른바 유통 ‘갑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당부분 법률 개정을 시도한 것과 차이가 있다.

공정위는 이미 프랜차이즈 본부가 가맹점에 공급하는 필수물품 가격을 공개하는 가맹사업법 시행령을 개정하고, 현재 공정거래조정원만 전담하는 대리점·가맹사업거래 분쟁조정협의회도 지자체에 둘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입점한 업체가 불가피한 사유가 생겼을 때 영업시간을 줄여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권리도 법적으로 보장했다. 공정위는 대리점법 개정문제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반면 재벌의 경제력집중과 관련한 입법시도는 사실상 거의 없다. 공정위는 대기업 지주회사나 대표회사가 계열사로부터 쉽게 벌어들이는 브랜드 수수료에 칼을 대려고 했지만, 이내 내려놨다. 대신 공시제도 확대로 방향을 틀었다. 브랜드 적정가치는 산정이 쉽지 않은 만큼, 경쟁당국은 공시의무를 강화해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적정가치가 산정되도록 유도하겠다는 방침인 셈이다.

공정위는 현재 지주회사제도와 공익법인 문제와 관련해 실태조사를 마쳤지만, 시장 안팎에서는 일관된 규제를 적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개별그룹이 처한 사정에 따라 해법은 다를 수밖에 없는데 기존 출총제처럼 경직된 규제를 강화하는 식으로 공정위가 개혁카드를 꺼내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여기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질서가 근본적으로 달라지면서 과거 80년대 재벌정책으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김 위원장의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저성장·불확실성이 고착화된 이른바 ‘뉴노멀 시대’에서 강력한 규제로는 재벌의 변화를 유도할 수도 없고, 오히려 부작용만 클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자칫 경직된 규제를 입법화할 경우 국회에서 겉돌기만 할 뿐 실효성을 얻기가 쉽지 않다”면서 “공정위가 강력하게 재벌 규제를 펼치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경직된 금산분리도 완화될 가능성 ‘솔솔’


시선은 ‘금산분리’ 문제로 향하고 있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결합을 제한하는 금산분리 역시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으로 해묵은 규제 중 하나다. 사전적 금지 원칙에 입각한 금산분리 규제체계는 1980년대 이후 재벌들이 금융업에 대거 진출한 상황을 배경으로 만들어 졌다.

하지만 외환위기와 2003년 카드 대란 등으로 재벌의 금융계열사 수가 줄고 비중이 대폭 하락하면서 금산분리 체계가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지적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사실상 금산분리 규제는 삼성그룹에만 해당한다. 여당 일각과 시민단체 등에서는 삼성에게만 특혜를 주는 보험업법 감독 규정 등을 변경해 금산분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김상조-최종구-장하성’ 이른바 재벌규제 트리오의 생각은 달라 보인다. 삼성생명이 고객 돈으로 삼성전자의 지배를 강화하고 악용하는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압박은 하고 있지만,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뜻은 한번도 시장에 던지지 않고 있다. 삼성의 자발적 개혁이 이뤄진다면 경직된 금산분리 문제도 완화될 수 있다는 인식이 기본적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부처 한 관계자는 “사실상 삼성에 해당되는 금산분리를 위해 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입법과정도 쉽지 않거니와 제도의 효율성도 담보하지 못한다”면서 “삼성이 어느정도 개선책을 내놓으면서 고객 돈으로 삼성전자의 지배를 강화하고 악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만 보인다면 경직된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중간금융지주 도입 문제도 다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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