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 CJ법학관에서 열린 제14회 한국법률가대회에서 ‘학부 법학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제언’ 주제발표에 나선 윤성현 한양대 정책학과 교수는 “법학교육을 단순히 법조인 양성의 한 방편으로만 가볍게 치부할 것이 아니라, 법조인 양성을 넘어 법학자와 입법·행정 분야 법 전문가의 양성, 대한민국의 입헌민주적 시민을 양성하는 기초적인 작업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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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로스쿨이 설치된 대학은 법률에 따라 학부에 법학과를 둘 수 없다. 이로 인해 법학 기초이론 교육이 약화되고 학문후속세대 양성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현철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률가를 제외한 법학 전공자가 사회 각 영역에 진출할 기회가 대거 축소됐다”며 “수많은 공무원, 기업인, 언론인 등이 법치주의 의식을 보유하고 자신의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 역할을 수행하는 자리에 가기 전에 법학을 학습하는 기회가 반드시 주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법연수원 교수인 박찬우 부장판사는 현행 로스쿨 교육의 한계도 지적했다. “로스쿨 학생들의 뛰어난 잠재능력과 학업에 쏟아 붓는 노력에 비해 그 결과물이 상당히 안타까운 수준에 그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며 “법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눈에 익은 사실관계 구조에 대해 기계적으로 판례를 적용해 기재한 답안지를 대할 때면, 안타까움과 당혹감에 더해 이후 일선 법원에 복귀했을 때 법정에서 만나면 어떻게 하나라는 불안감마저 들 때가 있다”고 토로했다.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해결방안으로 로스쿨 설치 대학에도 학부 법학과 설치를 허용하되,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운영할 것을 제안했다.
윤성현 교수는 “로스쿨 설치대학이 학부에 법과대학을 두는 경우에는 기초·이론 법학의 전진기지로 삼고, 로스쿨에서는 과거 사법연수원과 유사한 수준의 실무 및 심화된 전문교육을 주로 담당하도록 대폭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찬우 부장판사는 이러한 제안에 대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법전원이 설치돼 있는 주요 대학에 학부 법학과까지 설치되는 경우, 기초·이론 법학의 전진기지가 되기보다는 과거로 돌아가 로스쿨 입학 및 로스쿨에서의 좋은 성과를 위한 예비 과정으로 전락할 위험이 매우 크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이에 대해 김봉수 성신여대 법학부 교수는 “복수전공 수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해 신입생은 선발하지 않는 복수전공 학과로서 학부에 법학과를 둘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을 교육부에 요청할 필요가 있다”며 절충안을 제시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법학교육의 혁신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진단도 제기됐다. 윤 교수는 “법학은 일반 교양교육을 포함한 시민교육의 측면과, 사법전문가가 아니라도 입법이나 기업분야 등 다방면의 법전문가를 양성하는 방향으로 확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양대 정책학과의 ‘헌법과 공공정책’ 과목을 예로 들며, 법학과 다른 학문 분야의 융합 가능성을 제시했다.
김경찬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이 직면한 현재의 청소년 자살, 초저출산, 지방소멸 등 복합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창의적, 융합적인 법학교육이 필요하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관련 분야 학문 연구자들이 연합해 관련 내용을 연구하고 교재를 구상하는 등 연구 분야의 집중적이고 광범위한 투자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참석자들은 이러한 변화를 위해서는 법학계 전체의 조직적인 노력과 함께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현철 교수는 “법학 전임교수들뿐만 아니라 법학을 교육하고 연구하는 모든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현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무엇보다 그 대안을 실현시킬 수 있는 부단한 노력을 할 때에만 지금의 비정상이 조금이라도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성현 교수는 과제 해결을 위해 “법학이 전문교육과 시민교육을 아우르며, 기초와 이론이 탄탄한 가운데 융합적 사고가 가능한 교육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