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행정처는 31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자체 조사단이었던 특별조사단의 조사 대상 410개 문서파일에서 앞서 지난달 5일 공개하지 않았던 228개 중 중복된 파일 32개를 제외한 196개 파일을 비실명화 조치를 취하고 명예훼손 우려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 주관적 평가를 배제한 채 원본자료를 공개했다.
“서기호 의원 고립시켜라”...‘재판 가이드라인’ 논란
공개 문건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는 ‘[98]상고법원입법을위한대국회전략’, ‘[135]상고법원입법추진환경및국회통과전략’ 등에서 상고법원 입법을 위해 법사위원을 중심으로 개별 의원의 지역구 현안 등을 거론하며 치밀한 의원별 공략 포인트를 제시하는 등 맞춤형 접촉·설득 전략 등을 수립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령 ‘[117]상고법원안법사위통과전략검토’ 문건에선 이병석 당시 새누리당 의원의 공략 포인트로 이 의원의 관심사인 “노후하된 대구법원 청사 이전을 적극 추진한다”는 방안이 검토됐다. 아예 ‘[155]법무비서관실과의회식관련’문건에는 국회의원 설득을 위해 “적정한 시기에 ‘상고법원 지부’안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서울에만 상고법원을 설치하지 말고 반대하는 법사위 국회의원 지역에 지부를 둔다는 방안이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또 박근혜 전 대통령 하야 정국에서 대응 전략 문건도 만들었다. 여기에는 일종의 ‘판결 가이드라인’이라 할 수 있는 대법원 전략도 담겨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371]대외비문건(대통령하야정국이사법부에미칠영향)’에서 법원행정처는 “대한민국 중도층의 기본적인 스탠스 ‘정치는 진보, 경제/노동은 보수’”라며 “대북문제를 제외한 정치적 기본권, 정치적 자유와 관련된 이슈에서는 과감하게 진보적인 판단을 내놔야 한다”고 적었다. 이어 “단, 대북문제와 경제, 노동의 문제에서는 보수적 스탠스 유지”라고 덧붙였다. 헌법상 보장된 법관의 독립을 훼손하면서까지 재판의 방향성을 언급한 대목이다.
민변·대한변협 압박
이 문건에는 ‘재판 관련 빅딜’을 시도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도 등장한다. 문건은 민변에 대한 강온 양면 전략 필요에서 ‘강한 고리 대응’으로 통진당을 언급한다. 그러면서 “통진당 후속 대응과 관련해 대법원에 대한 공세를 늦출 움직임이 없는지 동향 파악이 우선”이라며 “다만 이에 관한 적극적 빅딜 모색은 소송에 관한 내용으로서 극히 민감한 사안이므로 지양할 것”이라고 돼 있다. 이는 적어도 소송 관련 빅딜을 검토했다는 대목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당시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을 반대하던 하창우 대한변협 회장 개인에 대한 고립에도 나섰다. ‘[95]대한변협에대한대응방안검토’ 문건에서 법원행정처는 “대한변협 회장 개인을 대한변협 구성원과 지방변회로부터 고립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법원과 대한변협과의 간담회 개최 중단 △대법원장의 대한변협 주최 행사 전면 불참 △대한변협신문 광고 게재 중단 △대한변협 법률구조 예산 지원 중단 등의 방안이 검토됐다.
한편, 이날 공개된 파일에서 ‘[171]제20대국회의원분석’, 차성인 판사에 대한 개인적 평가와 개인 정보 등을 담은 ‘[319]차00’, 이탄희 판사 등의 통화내역 등을 담고 있는 ‘[405]이탄희 판사 관련 정리’ 문건은 비실명화 등을 통해서도 개인정보, 사생활 비밀 등의 과도한 침해를 막기 어렵다며 실질적인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