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갑 고용부 장관은 “최고의 기술을 보유하기 위해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중소기업의 CEO가 된 여러분들께서 고생을 많이 하셨다”라며 “여러분과 같은 숙련기술인들이 존경 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책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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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장난감을 직접 만들어 가지고 놀던 이 대표는 ‘기술로 최고가 되면 살아남는다’는 신념으로 창원공고 기계과에 진학한 뒤 1981년 기아기공(현 현대위아)에 입사해 공작기계 조립 업무를 담당했다.
이 대표는 “기계의 근간이 되는 공작기계를 다루다 보니 기계라는 물건의 원리를 이해하게 됐다”며 “재직 중 야간에 창원기능대학을 다니면서 기계와 관련해서는 어떤 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졌고 이 때부터 사업에 대한 꿈을 꿨다”고 전했다.
이후 이 대표는 1992년 SMT(옛 보국기업)을 설립하고 유공압을 응용해 타이어 알루미늄 휠 부품을 제조하는 자동화 기계를 만들었다. 낮에는 영업과 기계조립, 납품을 했고 밤에는 설계를 했다. 가공은 외주를 통해 해결 가능했기 때문에 혼자서도 사업을 꾸릴 수 있었다.
이어 “그때의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져 사세 확장에 큰 도움이 됐다”며 “기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자신감이 만들어 낸 결과인 셈”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이후 인재양성과 SMT만의 아이템 개발을 위해 2009년부터 매출의 4% 이상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해 자동차 현가장치용 판 스프링 홀 열간 가공기술과 집진기용 인젝터 증폭 효율 증가기술 등을 개발했다. 이후에도 사내기술연구소를 설치해 투척용 소화기, 정미기계, 분도기 등 SMT만의 상품을 만들었다.
10월의 기능한국인으로 뽑힌 봉 대표는 가전제품과 자동차에 들어가는 BLDC 모터(기존 DC모터보다 소형화 및 영구적 사용이 가능한 모터)를 제작하는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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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부터 미술에 소질이 있었던 봉 대표는 미술로 돈을 벌기는 힘들다 생각해 성남직업훈련학교로 진학했다. 교과 과정 중에 기술과목에 흥미를 느낀 그는 아버지의 권유로 선반을 다루게 됐다. 이후 2급 자격증을 취득한 데 이어 최초로 시행한 기계가공기능사 1급을 취득하며 선반뿐만 아니라 밀링, 연삭 등 기초적인 기계에 대해 터득했다.
동기들보다 높은 연봉을 받고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했지만 봉 대표는 창업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창원기능대학 기계과에 진학했다. 이후 1996년 충남 천안시의 허름한 창고에서 아내와 둘이서 지금의 봉봉전자를 설립하고 전동공구에 들어가는 모터를 제조했다.
그는 “설계와 가공을 직접 처리할 수 있어서 충분히 사업을 꾸릴 수 있었다”며 “덕분에 외환위기 당시 경쟁 업체들이 도산하는 와중에도 버텼고 경쟁 업체들이 담당하던 일까지 맡게 돼 사업을 안정적으로 영위했다”고 전했다.
봉 대표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미래를 고민했다. 전동공구 시장 전망이 밝지 못하다고 판단해 후에는 계량기 모터를 생산했고 계량기 모터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 다시 한 번 업종을 바꿨다. 바로 BLDC모터다. 이전의 소모성이 심했던 DC모터와 달리 영구적이고 에너지 효율도 좋아 성장성이 좋다고 판단했고 BLDC모터 개발을 위한 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2006년 자체적으로 BLDC모터 개발에 성공했다.
봉 대표는 “BLDC모터로 15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또 다시 공부하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