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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데일리 안승찬 특파원] 지난 11일 우버 이사회가 소집됐다. 그간 불거진 각종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다. 몇 개월간 우버의 사내 문화를 조사한 에릭 홀더 전 법무장관의 보고서도 검토했다. 우버 창업자이지 최고경영자(CEO)인 트래비스 칼라닉의 거취 문제까지 논의하는 심각한 자리였다. 우버의 여성 이사인 아니아나 허핑턴은 우버가 남성중심적인 사고를 벗어나려면 우버 이사회에 더 많은 여성을 참여시켜야 한다고 발언했다. 그러자 건너편에서 듣고 있던 74살의 데이비드 본더먼 이사가 탐탁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여자가 많아지면 말만 더 많아질텐데.” 다시 비난이 쏟아졌고, 본더먼은 우버 이사직에서 사임했다.
본더먼 이사의 말이 우연히 나온 건 아니다. 그는 사모펀드인 TPG캐피탈의 공동 창업자다. 그런데 TPG캐피탈의 이사회와 주요 경영진에는 여성이 단 한명도 없다. TPG만 그런게 아니다. 대부분 미국 사모펀드는 철저히 남성 중심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우버의 여성 임원은 25%지만 미국 6대 주요 사모펀드는 모두 20%를 밑돌았다. 우버보다 여성 임원의 비중이 더 낮다. 어쩌면 본더먼은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얘기한 것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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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절대적 부족은 폭력적인 남성 중심적 문화를 더욱 뿌리 깊게 만든다. 여론조사기관인 엘리펀드가 지난해 실리콘밸리에서 10년 이상 여성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60%가 성추행을 경험했고, 그 중 65%는 자신의 상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피해를 입은 여성의 60%는 이의를 제기했지만, 39%는 ‘경력을 망칠까 두려워’ 침묵했다고 대답했다. 실리콘밸리에 성추행이 만연돼 있다는 심각한 조사 결과다.
실리콘밸리는 창업 때부터 뜻 맞는 남자친구끼리 시작하는 곳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이 함께 세웠고, 애플은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함께 세웠다. 구글도 스탠퍼드에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가 창업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남자끼리의 문화를 ‘실리콘팰리(pally. pal은 남자들끼리 격의 없이 부르는 말)’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실리콘밸리 벤처투자금융업체 카포클라인의 공동경영자인 프리다 카포클라인은 “이런 일들이 실리콘밸리에 뿌리 깊다”면서 “그 걸 바로 잡는 것은 단거리 질주가 아니라 마라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