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집회를 하겠다고 신고해놓고 정작 집회를 열지 않는 ‘유령집회’가 작년 100건 중 98건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 숭례문 인근에서 대규모 정부 규탄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사진=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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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이데일리가 경찰청이 제공한 ‘집회신고 후 집회 개최 및 미개최 현황’을 분석한 결과 작년 집회 신고 횟수는 430만4917건으로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전년(357만9541건)대비 20.3% 증가한 수치다. 코로나19 방역정책으로 다중운집을 자제하던 분위기에서 정치·사회·경제적 이슈 등에 대한 갈등이 표출되면서 억눌렸던 집회 수요가 분출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실제 신고하고 개최된 집회는 7만6031건으로 전년(8만6348건)대비 11.9% 줄었다. 이는 정부의 방역지침으로 참여 인원을 엄격히 제한해 집회가 소규모 ‘쪼개기’로 열리다 작년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등으로 단체 간 ‘세력 대결’로 이어지는 대규모 양상으로 바뀌면서 개최 건수 자체는 줄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신고하고 열리지 않은 집회는 422만8886건으로 전년(349만3193건)대비 21.1% 급증했다. 미개최율이 98.2%에 달했는데 신고한 집회 100건 중 98건 이상이 실제로 열리지 않은 것이다. 유령집회는 최근 5년 사이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2018년 95.5% 수준에서 2019년 96.5%, 2020년 97.4%, 2021년 97.6%로 증가했다.
유령집회를 막으려고 최대 100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이 2017년부터 시행됐지만, 실제론 부과된 적 없고, 따로 통계를 만들지 않을 정도로 사문화된 상태다. 경찰 관계자는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신고된 집회 장소에 경찰력을 배치하는데 미개최 집회는 경찰력 낭비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 집회신고 후 집회 개최 및 미개최 현황(자료=경찰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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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장소를 선점하는 이른바 ‘알박기’가 여전한 것도 문제다. 같은 장소에서 집회를 열 수 없는 점을 악용하는 것이다. 경찰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진행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 권고가 나온 지 1년이 넘었지만, 극우단체의 장소 선점에 밀려 소녀상 먼발치서 개최하고 있다.
‘위드 코로나’ 시대로 진입한 가운데 국론분열 현상이 심해지면서 특정 이슈를 선점하기 위한 세력 대결 양상의 대규모 집회와 이에 대응하는 반대 집회가 모두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인근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시민분향소 앞에서 보수단체인 신자유연대도 바로 옆에서 맞불집회를 벌이고 있다.
이에 경찰은 집회·시위의 소음 단속 기준을 강화하는데 나섰다. 최고 소음기준 위반 횟수를 1시간 동안 2번 이상, 평균 소음 측정 시간은 5분으로 각각 줄이는 내용 등이 포함된 집시법 시행령 개정안은 이르면 하반기부터 시행된다. 경찰청 관계자는 “과도한 소음을 동반하는 집회·시위에 대해 더욱 신속하게 유지·중지 명령과 같은 소음 조치 처리를 통해 시민의 피해를 최소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