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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24일(현지시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에게 상위 3개 고객사, 연간 매출과 주문 잔고, 생산 증설 계획 등 사실상 기업들의 기밀에 해당하는 민감한 정보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반도체의 경우 고객사와 매출, 생산능력은 거래와 가격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기업들로서는 영업비밀에 해당된다. 특히 글로벌 반도체 경쟁이 심화한 상황에서 이와 같은 정보 유출은 향후 미래 설비 투자 등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업계에선 미국 정부의 이같은 조치는 중국 경제를 한층 더 옥죄기 위한 치밀한 내막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힘의 논리를 이용해 각 반도체 기업들의 정보를 무리하게 요구하고 있다”며 “이 정보들로 중국 경제로 흘러가고 있는 물량, 가격 등을 더욱 자세히 살펴보고 동맹국과 비동매국을 가려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뿐만 아니라 유럽연합(EU)과 영국까지 가세해 자국 이익을 우선하며 반도체 견제가 강화되자 M&A 시장도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3년 내 의미 있는 규모의 M&A’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대외적 리스크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원자재·소부장 대란, 비싼 가격에도 사고 싶어도 못 산다
반도체 생산의 근간이 되는 원자재와 소부장 대란도 악재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로 반도체 기판도 공급난에 시달리고 있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도 올해 7월 실적 발표에서 10년 만에 처음으로 반도체 기판 부족 문제를 언급하며 해결방안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이 영향으로 기판의 평균판매가격(ASP)은 작년 4분기 30%, 올해 1분기 10% 오른 상태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사태가 올해 4분기엔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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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집중 견제 속에서도 중국은 반도체 칩 설계와 파운드리 분야를 필두로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2025년이면 중국이 단일 국가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반도체 시장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와 중국반도체산업협회(CSIA)에 따르면 2020년 1280억달러(약 151조7312억원)규모였던 중국 반도체 산업 매출은 오는 2025년 2570억달러(약 305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2000년대 이전까지 불모지에 가까웠던 중국 반도체 산업이 중국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자급자족으로 지속 성장할 것이란 분석이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은 제조에서는 떨어지지만, 개발은 잘 하는 나라”라며 “현재 미·중 패권 다툼 속에서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는 듯 보여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뿐만 아니라 국내 반도체 기업들에 항상 잠재적 경쟁자로 여겨진다. 막대한 지원에 힘입어 언젠가는 따라잡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