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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 주요 기관장 2명의 임기가 이달말 끝나는 가운데 이를 소관하는 정부부처와 관련 기관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로 연임 결정을 미룬다. 통상적으로 원장 선임 절차 등을 감안하면 3개월 이전에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새 정부출범 이후로 결정을 미뤄 벌써 눈치를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연구회)에 따르면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의 연임 결정을 5월 차기 정부 출범 이후로 결정을 미루는 것으로 확인됐다.
원장 연임 여부가 중요한 이유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과학과 정치를 분리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과학계에서는 과학기술 리더십 확보가 실제로 지켜질지 확인할 수 있는 첫 시험대라고 보고 있다. 최근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비롯해 새로 들어설 정부와 현 정부의 갈등, 정부 에너지 정책 전환, 역대 정권 초기 기관장 연속 사퇴 등과 맞물려 기관장 연임 결정 여부가 최대 관심사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원자력연 원장 정권 바뀌어도 살아 남나
원자력연과 ETRI 원장은 모두 연임에 도전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임이 결정되려면 오는 31일에 예정된 정기이사회 안건으로 올라가거나 4월 임시이사회 등을 통해 결정이 돼야 한다. 하지만 이달 말 이사회 안건으로 포함되지 않았고, 4월에는 안건을 상정해 결정하는 이사회가 열리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과학계에 정통한 관계자는 “이달말 이사회 안건으로 포함되지 못했고, 4월에도 경영협의회만 열릴 예정”이라며 “연구회와 과기부가 정권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보며, 새로운 정부 출범 이후 과학계 부처 장관 등이 정리된 이후에나 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연구회 정관상 새로운 원장 취임 전까지 현 원장의 임기는 자동으로 연장된다. 실제 연임은 원자력연과 ETRI 모두 일부 구성원들이 반발하고 있고, 이사회 구성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험난한 과정이 예상된다. 연임에 도전할 수 있는 자격요건도 완화됐지만, 그동안 출연연 원장이 연임에 성공한 사례가 이병권 前 한국과학기술연구원장, 김장성 한국생명공학연구원장 밖에 없었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원자력연은 윤 당선인이 탈원전 정책 폐기를 시사한 만큼 정책 전환 속에서도 연임에 성공할지 관심이 쏠린다. 박원석 현 원장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맞춰 기관을 이끌었다는 점, 경주 분원 설치로 직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는 점 등이 변수가 될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 10여명 교체..관행 바뀔지 주목
김장성 대덕연구개발특구기관장협의회장은 “과거에는 기관장 사퇴 등이 관행적으로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 “시대가 많이 바뀌었고, 코로나19 등 국가 난제 해결에 과학기술 관련 연구기관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바뀔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당선인은 이와 달리 대선 과정에서 과학기술계 핵심 공약으로 정치적 중립성 보장,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자율적인 연구환경 확립을 제시하면서 ‘과학강국’을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러한 기대감과 함께 역대 정부에서 관행을 보면 차기 정부에서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럼에도 과학기술의 특성, 연구의 지속성을 고려해 기관장의 3년 임기는 최소한 보장해야 한다는 게 과학계의 중론이다. 이석훈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 총연합회장은 “윤 당선인의 ‘과학과 정치를 분리하겠다’는 발언이 현실화될 수 있는 첫 신호가 출연연 기관장 연임이 될 것”이라며 “MB 정부때부터 기관장 물갈이가 심해져 10여년 넘게 관행이 고착화된 악순환의 고리를 윤석열 정부가 없애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