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관대표회의는 지난 19일 경기도 고양에 위치한 사법연수원에서 정기회의를 열고 재적 법관 119인 중 105인이 표결에 참석해 과반인 53표의 찬성으로 사법농단 연루 법관들 중 ‘재판거래 의혹’을 받는 법관들의 행위에 대해 “탄핵소추절차가 검토돼야 할 중대한 헌법위반행위”라고 의결했다.
구체적으로 ‘법원행정처 관계자가 특정 재판에 관해 정부 관계자와 재판 진행방향을 논의하고 의견서 작성 등 자문을 해 준 행위’와 ‘일선 재판부에 연락해 특정 내용과 방향의 판결을 요구하고 재판절차 진행에 관해 의견을 제시한 행위’를 사실상 ‘재판 침해’로 간주했다.
이번 의결을 통해 법관들 스스로 자정작용 필요성을 인정하고 탄핵 검토 필요성을 의결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지만 반대표(43표)와 기권표(9표)가 절반에 육박했다는 점에서 법원 내부의 부정적 인식도 여실히 드러냈다. 자문기구인 법관대표회의의 이번 의결에도 불구하고 김명수 대법원장이 20일까지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는 것도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보수 야당 반대 확고…설득 난관·강행처리도 어려워
탄핵소추 권한을 쥐고 있는 국회 상황도 입장차가 명확하다.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던 더불어민주당은 법관대표회의 의결에 힘입어 적극 추진으로 선회했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2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사법부 개혁에 뜻을 같이하는 야당과 협의해 특별재판부 설치와 탄핵소추 논의를 즉각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소속 법제사법위원들과 탄핵소추안 논의를 위한 긴급회의를 열었다. 민주평화당과 정의당도 탄핵소추 필요성에 공감했다.
|
문제는 탄핵소추안 본회의 통과다. 헌법에 따라 탄핵소추안 의결을 위해선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즉 의원 150명의 찬성표가 있어야 본회의 통과가 가능하다. 민주·평화·정의당에 여당과 입장을 같이 하는 무소속 의원들의 표를 더하면 150표가 넘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국회선진화법 등으로 인해 한국당과의 합의 없이는 본회의 통과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당으로선 우회로를 통한 강행처리를 하더라도 헌재 탄핵심판에서 검사 역할을 맡게되는 탄핵소추위원을 법사위원장이 맡는 점을 감안하면 의미가 없다.
현재 법사위원장은 한국당 소속의 여상규 의원이 맡고 있다. 여 위원장은 법관대표회의의 의결 이후 각종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탄핵소추안에 대한 강력한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설사 탄핵소추안 통과에 대한 여야 합의가 이뤄지더라도 사법농단 연루 판사들 중 누구를 탄핵할지를 결정하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헌정사상 한 번도 국회 문턱을 통과한 적이 없다.
검사역 법사위원장 여상규 “탄핵 반대” 확고
탄핵 심판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탄핵소추위원인 법사위원장이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는 야당 소속의 김기춘 전 의원(전 대통령비서실장),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는 여당 소속이었으나 탄핵 찬성 입장으로 돌아섰던 권성동 의원이 각각 법사위원장으로서 탄핵소추위원을 맡았다.
|
여 위원장이 현재 입장을 유지하는 한 헌재에 판사 탄핵심판이 상정되기도 어렵고 상정되도 통과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피청구인들은 법원 내부에서도 잘 나가던 소위 엘리트 법관들”이라며 “이들은 인생이 달렸다는 생각으로 총력을 기울텐데 법사위원장이 소극적으로 나서면 승부는 한쪽으로 쏠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판사들에 대한 탄핵을 결정하기 위해선 9명의 재판관 중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탄핵이 결정되면 해당 판사들은 즉각 파면되고, 부결되면 탄핵소추와 함께 정지됐던 권한이 회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