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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한보 사태’ 장본인 정태수(96) 전 한보그룹 회장이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정 전 회장의 4남 한근(54)씨를 통해 이같은 사실을 확인하고 그간의 행적 등 구체적인 확인 작업에 나섰다. 정 전 회장의 사망이 확인될 경우 2200억원대에 이르는 천문한적인 체납 세금 환수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檢, 에콰도르에 사망진단서 등 진위확인 요청·현지조사 추진
25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 예세민)는 전날 외교 행랑편을 통해 아들 정씨의 여행가방 등 압수된 개인 소지품을 인계 받았다. 이 가방에는 에콰도르 당국이 발급한 정 전 회장의 사망 증명서와 함께 유골함, 국적 위조 여건 등이 있었다. 정씨는 에콰도르를 떠나 파나마에서 붙잡혔을 때 여행가방 등을 압수당했다.
정 전 회장의 사망 증명서는 에콰도르 당국 발급으로 돼 있다. 위조 여권상 이름과 함께 2018년 12월 1일 심정지와 신부전증 등으로 사망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다만 화장한 유골은 DNA가 검출되지 않아 신분 확인 용도로 쓸 수 없다.
지난 22일 국내로 압송된 정씨는 검찰 조사에서 ‘아버지가 지난해 12월 에콰도르에서 사망했고 자신과 가족이 임종을 지켜봤다’는 취지의 내용을 진술했다. 사망 증명서 등을 정 전 회장의 장례 관련 자료로 검찰에 제출했다.
검찰 관계자는 “정씨가 에콰도르에서 아버지 사망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는 다 확보했다고 한다”며 “다른 자료를 더 살펴보고 (정 전 회장)가족도 참고인으로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 전 회장은 이사장으로 재직하던 한 대학의 교비 72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을 받던 지난 2007년 5월 지병 치료를 이유로 법원 허가를 받아 일본으로 건너간 뒤 종적을 감췄다.
천문학적 체납세액 환수 힘들 듯…해외은닉재산 추적
일본으로 간 정 전 회장은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으로 건너갔다. 지난 2009년 정 전 회장의 소재를 포착한 법무부가 카자흐스탄 당국에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하자 이후 키르기스스탄으로 거처를 옮겼다. 한국은 키르기스스탄과는 지난해 11월에야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했다. 검찰은 이후 정 전 회장이 4남 정씨와 함께 에콰도르 제 2의 도시 과야킬에 정착한 것으로 보고 있다.
2225억원에 달하는 거액의 체납 세금은 결국 받아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1992년 증여세를 포함해 총 2225억 2700만원 상당의 세금을 내지 않아 현재 고액 상습체납자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체납 세금은 원칙적으로 상속되지 않지만 자식에게 재산이 상속되면 그 범위 내에선 상속자에게 세금을 부과할 수 있다. 다만 현재로선 정 전 회장의 재산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된 게 없다.
만약 자식이 아예 상속을 포기했다면 정부가 정 전 회장의 체납세급을 회수할 방법은 사실상 사라진다.
대신 해외은닉재산 합동조사단 등이 정 전 회장의 은닉재산 등을 찾는 방안이 거론된다.
정씨는 IMF 사태 당시 한보 자회사 자금 322억원을 스위스 비밀계좌 등 해외로 빼돌린 혐의로 지난 1998년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도주했다. 또 지난 2001년 수백억원대 재산국외도피 및 조세포탈 등 혐의로 국세청에 고발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