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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곽 전 의원이 2016년 3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남욱 변호사에게 받은 5000만원에 대해 정치자금법 위반을 인정했지만, 가장 핵심 혐의인 ‘50억원 뒷돈’ 혐의에 대해선 공소사실 일체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곽 전 의원은 정영학 화계사가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 등 다른 대장동 일당과의 수년간 대화를 녹음한 ‘정영학 녹취록’에서 이른바 50억원을 받을 인사들인 ‘50억 클럽’ 중 한 명으로 언급된다. 녹취록에는 김씨가 사업 동업자이던 남욱 변호사와 정영학 회계사에게 “(화천대유 직원인) 아들을 통해 곽상도에게 50억원을 줘야 한다”는 취지의 말이 담겼다. 그리고 2021년 4월 화천대유는 퇴직하는 곽 전 의원 아들에게 퇴직금 및 성과급 명목으로 50억원(세금 등 제외 후 25억원)을 줬다.
정영학의 하나은행 관련 증언들에 대해 法 “신빙성 없다”
검찰은 정 회계사 등의 진술을 근거로 곽 전 의원이 대장동 개발 사업 관련해 지원을 해주고 금품을 받았다고 기소했다. 구체적으로 곽 전 의원이 2015년 3월 무렵 화천대유가 참여하는 민간사업자인 ‘성남의뜰 컨소시엄’에서 하나은행이 이탈하는 것을 막아 컨소시엄의 와해를 막았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었다. 또 국회의원 활동 당시 부동산투기특별조사위원으로 활동한 것은 대가성이 있다고 적시했다.
정 회계사는 이와 관련해 법정에서 “(2015년 3월께) 호반건설 회장이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을 찾아가 ‘그랜드 컨소시엄’ 구성을 제안했다는 얘기를 하나금융 이모 부장에게 전해 들었다”고 진술했다. 하나금융 측이 당시 호반건설 회장으로부터 직접 새로운 컨소시엄 참여를 제안받아 기존 ‘성남의뜰 컨소시엄’이 와해될 위기가 쳐할 가능성이 있었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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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정 회계사가 언급한 하나은행 이모 부장도 “호반건설 회장에게 제안받았다고 말한 자체가 없다”고 말하는 등 하나은행 관계자 중에선 ‘그랜드 컨소시엄’을 아는 경우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기 당시 하나은행 부행장만 “호반건설의 제안이 있었지만 당시 이미 ‘성남의뜰 컨소시엄’ 구성이 상당수 진행된 상황이라 거절했다” 정도의 진술을 했다.
곽 전 의원 아들에 대한 50억원 지급을 최종 결정한 김씨는 검찰 조사와 법정에서 “평소 조카처럼 대할 정도로 친분이 있던 곽 전 의원 아들의 업무실적이 뛰어났고, 퇴직할 무렵에 건강이 나빠져 이에 대한 보상 내지 위로금 명목으로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또 녹취록 속 ‘50억 클럽’ 등에 대해서도 “동업자였던 남 변호사와 정 회계사에게 더 많은 비용 부담을 주기 위한 허언이었다”고 강조했다.
김만배 측 “녹취록 대화, 경비 뜯어내기 위한 허언” 주장
법원은 결과적으로 검찰 주장을 대부분 배척하고 곽 전 의원과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곽 전 의원에 대한 퇴직금 등이 사회통념상 이례적으로 과다한 것은 맞다”면서도 “컨소시엄 와해를 막는다는 알선과 관련이 있다거나 그 대가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 냈다.
구체적으로 “곽 전 의원이 2015년 2월께부터 대장동 사업에 관여하기 시작했다거나, 하나은행이 컨소시엄을 이탈해 새 컨소시엄에 참여하게 될 위기 상황이 존재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곽 전 의원이 도움을 줘야 하는 컨소시엄 와해 위기 자체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녹취록 속에 언급된 ‘50억 클럽’에 대해서도 “공통비 분담에 관한 분쟁이 발생한 이후 김씨가 이른바 ‘약속클럽’에 포함된 사람들에게 각 50억원을 줘야 한다는 말을 구체화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며 “곽 전 의원에 대한 50억원 명목에 대해서도 컨소시엄 와해 위기 문제 해결을 연결 지어 말하지 않았다”며 김씨의 진술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울러 아들이 받은 돈을 곽 전 의원이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대리인으로서 금품 및 이익이나 뇌물을 수수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드는 사정들이 존재한다”면서도 “아들의 급여 수령 계좌에 입금된 성과급 중 일부라도 곽 전 의원에게 지급됐거나 사용됐다고 볼 만한 사정은 보이지 않는 만큼, 직접 받은 것으로 평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이 곽 전 의원 재판에서 검찰이 대장동 사건에서 핵심 증거로 내세우는 ‘정영학 녹취록’과 정 회계사의 주장에 대해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음에 따라 향후 다른 대장동 사건에서도 영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김씨가 ‘정영학 녹취록’에 대해 “동업자들에게 더 많은 비용부담을 이끌어내기 위한 허언이었다”고 일관되게 주장하는 만큼, 검찰로서는 다른 사건에서의 혐의 입증을 위해선 추가적인 증거 확보가 필수가 됐다.
이에 따라 검찰은 대장동 개발특혜 의혹과 관련한 ‘천화동인 1호’ 실소유주 의혹, 대장동 재개발 사업 관련 ‘배임’ 의혹, 다수 고위 법조인 등이 거론되는 ‘50억 클럽’ 의혹 등과 관련한 수사와 재판 등에서도 검찰은 녹취록 속 대장동 일당의 대화의 신빙성을 높일 만한 추가 증거 확보에 열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 관계자는 “대장동 의혹의 ‘스모킹건’으로 평가받던 정영학 녹취록과 정 회계사의 증언이 법정에서 신빙성이 인정되지 않은 것은 검찰 입장에선 큰 충격일 것”이라며 “검찰 입장에선 대장동 사건에서 상당한 입증의 숙제를 안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