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기아, 노조 요구안 따른 2000억 추가 비용 발생
9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 노조는 올해를 그룹사 공동투쟁 원년의 해로 정하고 공동투쟁을 전개한다. 현대차 노사는 이달 10일 상견례를 진행한다. 기아 노조는 조만간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임단협 요구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기아 노조는 현대차 노조와 비슷한 규모(월 16만 5200원)의 임금 인상안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지난해 기본급 인상액(월 7만5000원)의 두 배가 넘는 규모로 기본급 인상 폭이 가장 컸던 2015년(월 8만5000원)과 비교해도 두 배 수준에 달한다.
노조 요구안이 받아들여질 경우 현대차와 기아는 단순 계산만으로도 각각 1308억원, 685억원의 비용이 추가로 발생한다. 각종 수당과 성과급 등을 합치면 회사가 감내해야 할 비용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월 16만5200원의 임금 인상안 외에도 △신규인원 충원 및 정년연장을 통한 고용안정 △성과급 전년도 순이익의 30% 지급 △미래자동차 공장 국내 신설 등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 노조가 역대급 청구서를 내민 것은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으로 인한 지난 2년간의 희생을 보상받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현대차 노조는 2019년부터 3년간 무분규를, 기아 노조는 지난해 10년 만에 무분규로 임단협을 각각 타결한 바 있다. 현대차와 기아 노조는 지난 2020년 임금동결도 받아들인 만큼 이번엔 파업이라는 강력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요구사항을 관철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현대차와 기아 노조의 집행부 모두 ‘강성’이라 올해 무분규 타결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란 게 업계의 관측이다.
만약 현대차와 기아 노조 파업이 일어날 경우 가뜩이나 길어지고 있는 신차 출고난은 더 악화할 전망이다.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으로 출고 지연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일례로 투싼·스포티지 하이브리드(HEV) 모델 등 일부 차종은 출고까지 기간이 1년 반이나 걸린다. 여기에 파업까지 겹친다면 출고 기한은 최대 2년을 넘길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 기아는 2020년 노조가 나흘간 부분파업을 단행하며 약 1만 6000대의 생산손실을 입었다. 현대차와 기아는 올해 투쟁 방향을 굵고 길게로 정한 이상 파업에 따른 생산 손실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문제는 현대차와 기아가 파업을 단행할 시 강성 집행부가 있는 한국지엠과 르노코리아자동차 등에도 불씨가 옮겨붙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산업 환경 악재 투성에도 무리한 요구…“명분도 실리도 없어”
완성차업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 주요 도시 봉쇄 장기화, 원자재 가격 인상 등 악재가 쌓여 있다. 최근에는 지난해 이어졌던 공장 셧다운(잠정 폐쇄) 가능성도 점차 고개를 들고 있다. 중국 봉쇄령으로 와이어링 하네스(배선 뭉치)와 에어백 컨트롤 유닛(ACU) 등의 핵심 부품이 조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계획된 투자와 신차 출시 계획의 연기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 파업에 따른 노조 리스크 확대는 수입차업계의 국내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카허 카젬 한국지엠 사장은 지난달 27일 열린 한 포럼에 참석해 “한국지엠과 같은 외투 제조기업들에 있어 안정적인 노사 관계, 경제성, 노동 유연성과 수출 시장에 대한 적기 공급의 확실·안정성은 한국 투자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라며 “한국은 파행적인 노사 관계가 흔하고 짧은 교섭 주기와 안정적인 노사 관계를 저해하는 노조 집행부의 짧은 임기(2년), 불확실한 노동 정책 등이 지속적인 투자 결정을 방해한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직원들이 특근을 해도 차량 생산량을 따라갈 수 없는 상황에서 노조가 파업까지 벌이면 생산 손실이 막대할 수 있다”며 “출고 지연에 따른 피해가 소비자에게도 전가되는 상황이다. 업계가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무분별한 파업은 명분도 실리도 없는 만큼 노조가 상생을 위해 현명한 판단을 내렸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