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82명 밖에 없는 ‘곡물분쟁중재인’ 된 배완권 과장

포스코인터 법무실서 10년간 근무, 2016년 교육과정 시작
곡물거래 핵심단체 英GAFTA가 부여하는 ‘스페셜리스트’
국제 곡물거래분쟁서 승·패소 판정, 법원판결과 동일효력
“국내 3명 모두 포스코인터 직원, 회사 전문성 확대 기여할 것”
  • 등록 2020-08-06 오후 4:18:21

    수정 2020-08-06 오후 9:38:49

배완권 포스코인터내셔널 법무실 과장은 최근 전 세계에서 82번째로 곡물거래분쟁중재인 자격을 취득했다. 배 과장은 “회사가 중점 추진 중인 식량사업 확대에 있어 높은 전문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사진=포스코인터내셔널)
[이데일리 김정유 기자] “‘곡물거래분쟁중재인’ 자격을 얻기까지 약 4년의 시간이 걸렸네요. 앞으로 활발한 활동을 통해 회사가 중점 추진 중인 식량사업 확대에 있어 높은 전문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최근 곡물거래분쟁중재인 자격을 취득한 배완권(41) 포스코인터내셔널(047050) 법무실 과장의 야심찬 포부다. 이름조차 생소한 곡물거래분쟁중재인은 전 세계에서 배 과장을 포함해 단 82명에 불과하다. 국내에도 3명 뿐인데 이들은 모두 포스코인터 직원들이다. 인류가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식량, 이중에서도 핵심인 곡물거래 시장에선 크고 작은 분쟁들이 적지 않다. 배 과장은 전 세계 곡물거래분쟁 사건을 중재하고 이에 대한 승·패소 판정을 내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곡물거래분쟁 승·패소 판정 역할, 종합적 경험 필요해

배 과장은 6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98개국, 1900개가 넘는 곡물 관련 무역회사, 중개인, 검정사 등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런던곡물거래업협회’(GAFTA)에서 위촉하는 자격”이라며 “GAFTA에 신청된 곡물거래분쟁 사건들을 배당 받아 이에 따른 판정을 내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GAFTA는 전 세계 곡물거래를 위한 표준계약서 개발, 곡물거래에서 발생한 당사자 사이 분쟁의 중재(arbitration), 회원사 교육 및 회원사간의 네트워크 구축 등의 역할을 한다. 특히 GAFTA는 품목, 인도·운송 조건, 거래지역 등에 따라 80개 이상의 표준계약을 마련해놓고 있다. 전 세계 곡물거래의 약 80% 이상이 이 단체의 표준계약을 이용하고 있다. 곡물거래 과정에서 ‘중재’는 당사자 합의에 따라 분쟁을 법적 소송이 아닌, 제3자(중재인)에 맡겨 해결하는 과정이다. ‘외국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에 관한 유엔협약’(일명 뉴욕협약)에 의해 GAFTA 중재인이 내린 중재판정은 전 세계 뉴욕협약 체결국(105개국)에서 집행된다. 배 과장은 “중재인이 내린 중재판정문은 법원의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고 덧붙였다.

2015년 기준으로 GAFTA에 신규로 제기된 곡물거래분쟁 중재사건은 388건에 달한다. 미국 곡물기업 번기(Bunge)가 네덜란드 업체 니데라(Nidera)에게 러시아산 밀 2만5000t를 판매하려다가 러시아 정부의 수출금지조치로 해당 계약을 해지, 양사간 분쟁이 벌어졌던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사건은 GAFTA 중재 사건으로 다뤄진 바 있다. 배 과장은 “업무 특성상 회사 내부정보들이 다소 포함돼 있어 사례를 자세히 언급하긴 어렵지만 곡물거래의 경우 개별건의 거래규모가 크고, 시황에 따라 가격이 급변하면서도 품질 관리도 까다로워 타 품목대비 분쟁 발생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며 “때문에 영업, 오퍼레이션, 물류, 보험, 법무 등 거래의 여러 분야에서 보다 종합적이고 강화된 역량과 경험이 요구되는 게 사실”이라고 언급했다.

포스코인터 법무실에서만 10년 이상을 근무한 배 과장도 업무상 자연스럽게 국제거래분쟁 사건들을 여럿 경험해왔다. 여기에 최근 몇년새 식량사업 키우기에 나선 포스코인터가 곡물거래 물량확대 및 구성원들의 전문성 강화 등 인프라 투자에 적극 나서면서 GAFTA 중재인에 도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실제 포스코인터는 직원들에게 GAFTA 직무교육과정 이수 등을 권장 및 지원하고 있다. “10년 이상 국제거래 및 분쟁해결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쌓아왔던 만큼 관심이 생겼다”는 배 과장은 2016년 3월 영국 런던으로 날라가 GAFTA 중재인 자격을 따기 위한 첫 단계인 직무교육과정을 밟았다.

배완권 포스코인터내셔널 법무실 과장이 회사 사무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포스코인터내셔널)


총 3단계 과정 밟아야… 10년 이상 곡물거래 경력 필요

배 과장은 “GAFTA 중재인 자격은 크게 직무교육과정, 중재인 디플로마 시험, 10년 이상 곡물트레이딩 업무 경력 등 3가지 자격이 있어야 위촉될 수 있다”며 “첫 단계인 GAFTA 직무교육과정은 GAFTA의 80여개 표준계약에 대한 교육, 물푼 선적 및 운송 등 해상에 대한 사항, GAFTA 중재절차 등을 배우는데 각 교육과정마다 테스트를 치뤄 통과해야만 다음 과정으로 진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법률적 사항부터 여러 사업적 특성까지 학습해야 하기 때문에 학습분량이 적지 않고 직장생활과 병행해야 하는만큼 최소 1년의 기간이 소요된다”며 “나 역시 1년 이상의 시간을 거친 후 오프라인으로 직무교육과정을 이수했다”고 덧붙였다.

GAFTA 직무교육과정을 수료한 뒤 보게 되는 디플로마 시험은 약술형 문제, 중재판정문 작성, 판정문의 문제점 논평 등 3가지 분야로 구성된다. 배 과장은 “2018년 디플로마 시험을 치뤘는데 3시간 15분 동안 답안을 작성해야 한다”며 “문제도 길고 영문으로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매우 모자랐던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10년 이상의 곡물트레이딩 업무 종사 경력도 배 과장은 법무실에서 곡물트레이딩 사건을 담당하고 자문해왔던 점을 인정받았다. 이에 따라 배 과장은 올해 GAFTA 중재위원회로부터 심사를 받고 중재인 자격을 획득하게 됐다.

현재 포스코인터엔 배 과장을 포함해 3명의 GAFTA 중재인이 있다. 백상윤 시카고지점장, 김성희 우크라이나무역법인 과장 등은 배 과장 이전에 GAFTA 중재인 자격을 땄다. 국내 3명 뿐인 GAFTA 중재인이 모두 포스코인터 직원들이다. GAFTA 중재인 자격은 유럽 국가들이 많이 보유해왔다. 배 과장은 “GAFTA 중재인은 국제상업회의소 등 여타 중재기관과는 달리, 중재인 자격요건에 GAFTA 회원사에 소속돼 있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포스코인터는 국내 종합상사 중 유일하게 GAFTA 회원사로 소속돼 있었던만큼 중재인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환경적 요인이 됐다”고 말했다.

더불어 배 과장은 “중재 당사자들은 사건을 담당하는 중재인이 어느 업체 소속인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저를 포함한 포스코인터 소속 중재인 3명이 활발히 활동할 수록, 관련 업계에서 회사의 위상이 높아질 것”이라며 “이번에 국내에서 3번째 그리고 GAFTA 전체에서 82번째로 중재인으로 위촉됐는데 전 세계 식량업계에서 포스코인터의 위상을 높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국제무역은 수백년간의 관행이 실정법으로 반영되기도 하고, 여러 당사자들이 모여 합의한 국제기준이 오히려 새로운 관행을 만들내는 등 업무를 할 수록 계속 쟁점이 발견된다”며 “GAFTA 표준계약의 준거법인 영국법에 대해, 특히 물품거래 분야에 대해 기회될 때마다 연구해 중재인, 그리고 기업법무 종사자로서 역량을 키우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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