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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송승현 기자] 전 남편 강모(36)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고유정(36)이 12일 열린 첫 재판에서 계획적인 살인이 아니라 우발적 범행이란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날 오전 제주지법 형사합의2부(재판장 정봉기)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서 고씨는 수감번호 38번이 쓰인 연두색 죄수복을 입고 나타났다. 범행을 저지른 지 정확히 80일 만이다. 머리를 늘어뜨려 고씨의 얼굴이 드러나지 않자 방청객들 사이에선 “고개를 들라”는 고성이 터져나왔다. 앞서 지난달 23일 열린 공판준비기일에는 출석하지 않아 고씨가 대중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6월 12일 검찰에 송치되는 과정 이후 두 달 만이다.
자기 방어…‘우발적 범행’ 주장 되풀이
이날 고씨 측은 “(유가족에게)말할 수 없는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면서도 “수사기관에 의해 조작된 극심한 오해를 풀기 위해, 또 계획적 살인이 아님을 밝히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며 말문을 열었다.
고씨 측은 결혼 생활에서 무리한 성적 요구와 이혼 후 면접교섭 당시에서도 스킨십을 유도하는 등 강씨의 행동을 거론하며 계획 살인이 아닌 우발적 살인임을 재차 강조했다.
범행 도구를 준비하고 물색한 인터넷 검색 기록에 대해 해명하라는 재판부 요구에 “졸피뎀과 관련해서는 버닝썬 사태를 검색하다가 잠깐 검색했을 뿐”이라며 “(이 외 범행과 관련한 검색어도)연관 검색어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흐름에서 본 것이다. 범행 직전까지 (범행과) 전혀 상관없는 소일거리를 검색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계획 살인으로부터) 무고하다는 점을 밝혀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건 당일 고씨는 자신이 임신한 상태라고 알고 있었다”면서 “사랑하는 아들과 있는 장소에서 살인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살해할 만한 동기도 없고, 아이 앞에서 아버지를 죽이겠다는 상상은 사실에서 벗어난 말 그대로 상상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검찰은 “검색 내용만 보더라도 이건 연관 검색어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며 “우연찮게 검색한 것이 아니고 네이버와 구글에서 직접 쳐서 나온 결과”라고 고씨 측 주장을 반박했다.
피해자 측 변호인도 재판 직후 “고씨 측은 고인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방적인 진술을 다수했다”며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점을 악용해 터무니없는 진술을 한 부분에 대해 응당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음 공판기일을 다음 달 2일 오후 2시에 열린다.
고씨는 지난 5월 25일 제주시 조천읍의 한 펜션에서 강씨를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하고 제주~완도 해상 등에 유기한 혐의를 받는다.
하지만 수사당국의 판단은 다르다. 고씨의 몸에 난 상처가 강씨를 공격하다가 난 가해흔이거나, 범행과 상관없는 자해흔에 가깝다는 전문가 감정을 받아놓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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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방청권 배부한 제주지법, 아침부터 ‘장사진’
검찰은 고씨의 계획범죄 입증을 자신하고 있다. 공판준비기일에서 검찰은 공소장에서 △이혼 과정에서 형성된 강씨에 대한 왜곡된 적개심 △강씨로 인해 불안한 재혼생활이 계속될 것을 우려, 사전에 치밀하게 세운 계획을 통해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또 피해자의 유전자(DNA)가 발견된 흉기 등 증거물이 총 89점에 달하고, 졸피뎀과 니코틴 치사량, 성폭행 신고 미수·처벌 등 범행과 관련한 인터넷 검색이 수없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재판은 국민적 관심이 높은 만큼, 제주지법 사상 처음으로 방청권을 선착순을 배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재판은 오전 10시로 예정돼 있었지만, 방청권을 배부 받으려면 시민들이 아침 일찍부터 몰리면서 재판이 열리는 201호 법정 앞에서 1층 제주지법 후문 입구까지 장사진을 이뤘다.